호남 황해인 들이 개국한 코리아 (Korea=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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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황해인 들이 개국한 코리아 (Korea=고려)
  • 광주타임즈
  • 승인 2018.01.3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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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광주타임즈] 한국사이버문학인협회 이사. 시인 문경주=국가에게 할 요청은 알아듣고 이해하는 위치에 나타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아무리 좋은 국가라도 나타나는 국민만을 보호하기에도 바쁘다. 타향의 아스팔트에 누어 신음하는 사람은 국가가 보호할 수 있지만 자기 집 안방에 누어 신음하는 사람은 친척 또는 이웃조차 모를 수 있다.

고려(高麗)는 전남인과 황해도민들이 힘을 합해 세운 나라이다. 왕건 사망 후에 고려국의 제2대 혜종대왕은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왕무 태자가 보위를 이어 받았지만, 전라도 세력은 빈약했고 경기도와 충청도 세력은 막강했으므로 불과 2년4개월(서기943~945년)만에 혜종대왕은 왕위를 찬탈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건의 유언인 훈요 10조 중에 8조에서는 호남인들은 배역지심이 있으니 벼슬길에 등용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과연 사실일까? 우선 정황상 맞지 않는다. 왕건 자신이 사망하기 전에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아들 왕무의 나이 32세에 보위를 물려주었는데 그 아들이 출생한 호남이 배역의 땅이라며 그쪽 출신자들을 경계하라고 유언 했겠느냐 이다. 필자가 조사하여 분석한 결과로는 전혀 그런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2015년 박근혜 정부 당국에게 왕건의 훈요 10조 중에 8조의 내용이 잘못 해석되어 호남인이 억울한 누명을 썼으니 이를 바로 잡아달라고 청원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해석한 것이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요지이었다.

그렇다면 관련 당사자들이 스스로 연구하여 진실을 가려내서 호남인들에게라도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역사 해석이 잘못되어 호남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전라 남. 북도 4백여만 도민들이 서명이라도 하여 교육부에 진실 된 교과서를 만들어달라고 청원해야 할 것이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피해 당사자인 호남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나는 2016년 경기도에서 집을 수리하느라 한, 타일가게를 찾아 간일이 있었다. 그 타일 가게의 사장인 남자 분은 외부로 나돌며 주로 시공을 맡아하느라, 사무실과 매장은 아주머니가 지킨다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의 말투에서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가 배어 있음을 느껴 반가운 마음에 고향이 전라도 어디냐고 물었던 것이다.

순간, 이 아주머니는 움찔하더니만 정색을 하면서 내 고향은 전라도가 아니라, 충청남도 서천군이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충청도 태생이기 때문에 충청도 말씨를 잘 알고 있으며 지금은 전라도에 살고 있어서 역시 전라도 말도 좀 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이 아주머니의 말씨는 분명 충청도 말은 아닌 것 같았고 전라도말씨에 가까운데 어딘가 모르게 당황한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이 아주머니도 전라도 차별 문제로 고향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 재차 물었다.

‘나는 전남 무안군에 살고 있으며 호남차별 개선 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아마도 아주머니의 고향은 전라도 같네요.’ 라며 눈치를 살펴보니, 그 아주머니의 눈빛이 동요하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질문했다. ‘전라도 분이 여기 와서 사세요?’
‘아니요 건축 때문에 잠시 왔다가 다시 내려 갈 겁니다.’

그제 서야 이 아주머니는 안심이 되는 듯 호남차별 개선 운동에 관해 몇 가지 묻더니 자신이 고향을 숨기는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제 고향은 전라남도 완도입니다.’ 그녀는 어찌하다가 충청도의 신랑과 결혼했는데 주변에서 호남출신이란 이유로 차별이 너무 심해서 늘 고민하다가 남편의 직업 따라 경기도에 와서 타일가게를 문 열게 되었으며 혹시 자신이 호남 출신이란 사실 때문에 남편 사업이 차별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남편과 상의하여 남편의 고향인 충청남도 서천군으로 고향을 바꿔 말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의 다음 말에 나는 가슴이 찡~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신들이 타일가게를 문 열고 첫 번째로 다가오는 설 명절에 그분의 친정어머니가 완도 산 전복을 보내 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딸과 사위가 경기도에서 사업을 하는데 도와줄 것이 무엇인가를 궁리하다가 싱싱한 전복을 여러 상자 보내주면서 너희들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선물하여 사업이 번창하기 바란다는 뜻으로 전해왔다는 것이다.

이분들 내외는 감사한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전복들을 선물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명절이 끝나고 신년 하례 모임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몇몇 여자 분들이 자연스레 선물 받은 전복에 대하여 인사가 오가는 과정에서 그 전복 정말 싱싱하고 맛이 있었다며 어디서 구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었다.

순간! 이 아주머니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전라도의 친정어머니를 빼고 대신 충청도의 시어머니가 보내왔다고 둘러대자, 그들은 충청도에서도 그렇게 좋은 전복이 나오느냐며 앞으로 전복이 필요할 때는 당신의 시어머니에게 부탁하겠다는 너스레와 함께 자신들은 전복하면 전남 완도, 진도만 생각했는데 전라도 것들은 상대하기 싫다며 앞으로는 충청도 전복을 애용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전라도 사람들의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하여, 어찌나 불쾌 했는지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서 남몰래 눈물을 닦았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내 친정어머니가 마음 써서 보내준 귀한 전복을 선물하고도 친정어머니는 감춰야했고 대신 충청도인 시어머니가 주었다고 둘러대야 하는 현실도 억울하고 슬펐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전복을 받아먹고 전라도 것들이란 비난으로 되돌려 받아야하는 이 답답한 현실을 감당하면서 친정어머니에 대해서 너무 죄송스럽고 불효한 딸년이란 생각에 지금도 그 때를 떠 올리면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난다고 울먹이면서 제발 그 호남 차별 좀 불식시켜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며 내가 할 수 있는 호남차별 개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세상의 두꺼운 호남 편견의 벽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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