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하에 그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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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하에 그 왕!
  • 광주타임즈
  • 승인 2024.09.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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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발행인 칼럼]백형모 광주타임즈 대표·발행인=춘추시대 제나라의 환공은 춘추패자라 할 정도로 탁월한 군주였다. 관중과 포숙이라는 명 재상과 충직한 신하들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수조(수조), 역아(易牙), 개방(開方) 세 신하가 있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충성스러워 보였다. 감히 남들이 흉내내지 못할 행동으로 환공의 절대 신임을 얻었다.

수조는 스스로 궁형을 자처하여 환관이 되어 탐욕을 멀리하며 환공을 모셨고, 역아는 어린 친아들을 삶아 환공에게 사람 고기를 맛보라고 갖다 바친 자였으며, 개방은 이웃 위나라 영공의 아들이었으나 태자 자리를 버리고 환공에게 충성을 다했는데 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돌아가지 않는 자였다.

재상 관중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세 사람의 비뚫어진 속내를 알아보고 환공에게 멀리하라고 충언했다. 하지만 환공은 이들의 충성심을 전혀 의심치 않았고 관중의 말을 무시했다. 관중이 죽은 뒤 충신 습붕과 포숙이 잇따라 죽자 환공은 정치에 흥미를 잃었고 예전에 총애하던 수조와 역아, 개방을 다시 불러들였다. 간신의 시대가 온 것이다. 수조는 환공에게 미녀를 바쳤으며 역아는 환공의 입맛에 맞는 산해진미 요리를 날마다 들였으며 개방은 환공의 말에 무조건 동조하는 예스맨 역할을 했다.

환공이 병석에 눞자 세 신하들은 황명을 받았다며 병실을 봉쇄하고 다른 신하들을 차단하며 밀실정치를 했다. 환공의 부인이 몰래 물을 가지고 와서 바깥 상황을 전해주자 환공은 이미 기울어진 상황을 보며 절규했다. 

“슬프구나! 관중의 말이 옳았도다. 무슨 면목으로 저승에서 관중을 볼까” 

환공은 중병으로 누웠어도 아무도 돌보지 않아 산채로 굶어 죽었다. 더 비참한 것은 그가 죽은 지 70여 일 동안 시신을 돌보지 않아 시신에서 구더기가 나와 담장을 넘을 때에야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세 간신들은 후계 권력구도에서 첨예하게 대립, 내분을 일으켜 결국 나라를 기울게 했다.

이런 미래를 예측한 관중이 환공에게 올린 충언이 폐부를 찌른다.

“사람이 자기 몸을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수조란 자는 자기 몸에다 궁형을 가했으니 군주가 안중에라도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역아는 억지로 천명을 역행한 사람이니 군주가 안중에라도 있겠습니까?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개방이란 자는 그 아비에게 차마 못할 짓을 했으니 군주가 안중에 있겠습니까?”

충언을 멀리한 환공은 스스로를 탓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나라는 이미 기울고 자신은 구더기에 파먹히는 신세가 됐다. 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자기 자식을, 자기 부모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외면할 수 있는 희대의 간신들을 식별하지 못한 탓이다. 

어느 시대나 충신이 있으면 간신이 있었다. 충신은 때가 되어도 드물게 나타나지만 간신은 때만 있으면 빈틈을 비집고 나타난다. 현명한 군주(賢君)는 이들을 걸러낼 수 있지만 어리석은 혼군(昏君)은 이런 사람을 가려내기 극히 어렵다. 

대간사충(大姦似忠), 대사사신(大詐似信)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큰 간신과 큰 사기꾼은 오히려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크게 간사한 자일수록 더 충성스러워 보이고, 겉으로 보기엔 소박하게 보이지만 속에는 기교를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다. 

흔히 왕이나 황제 주변에서 큰 변고가 난 뒤 “그토록 충성했는데 차마 그 사람이 배신할 줄 몰랐다”는 탄식을 듣는다. 애초부터 충직한 신하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당신의 신하였던 척’ 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에 대간사충한 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로 인해 군주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거나 강산의 주인이 뒤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대간사충하는 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눈앞의 감언이설에 미혹되지 말고, 남을 험담하는 유언비어에 흔들려 실상을 못봐서도 안된다. 과감하게 직언을 아끼지 않고 “아니 되옵니다!”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충직한 사람을 가까이 둬야 한다.

작금의 이 나라 용산 정치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22대 국회 개원식에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다. 독재시절 이후 37년 만의 불참이었다. 대통령은 그 대신 영부인과 생일 파티를 즐겼다. 대표적인 불통의 마이웨이 행보다.

여소야대 여야가 극한 냉전 상태이고 아무리 험로가 예상되더라도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으로서 당당히 국회에 나가 정국을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이같은 여론에 직면하자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충신을 자처하며 어전을 울리듯 쩡렁쩌렁하게 말했다.   

“조롱과 야유가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곤욕을 치르고 오시라고 어떻게 권하겠나, 내가 국회 불참을 말씀드렸다.”

그런다고 못 가게하는 신하나, 그래서 안가는 왕이나 한치도 다름없다. 

국민은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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