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광타춘추]박상주 주필=가을 기운이 산골 물에 모여 있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가을 기운이 산골 물에 모였는데,
한낮에 홀로 이곳에 오다.
바람은 불어 한층 쓸쓸하고,
수풀 모양은 어지럽기만 하다.’
바로 당나라 시인 유종원의 시이다.
어째서 그는 가을 기운이 산골 물에 모여 있다고 노래한 것일까. 우리는 가을 기운을 흔히 산골 물보다는 하늘빛이나 산골 빛에서 읽는다.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 보이고 말이 살찐다는 것이다.
하늘이 높아 보인다는 것은 여름 하늘에 비해 가을 하늘이 한결 청명하기 때문일 것이고, 말이 살찐다는 것은 가을이 추수의 계절이고, 따라서 말들에게도 많은 먹이가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산골 물에 가을 기운이 모여 있다는 말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가을이 된다고 해서 골짜기로 흐르는 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의 산골짜기로 흐르던 물이나 가을날 흐르는 물이 모두 물인 것은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여름날에는 여름 기운이 산골 물에 모이지 않고 가을날에만 가을 기운이 산골 물에 모이는 것일까.
여러 가지 동기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을이 우리의 사고를 한곳으로 집중시키기 때문인 것 같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 말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일년내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하고, 또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린 사계절을 통해 한시도 쉬지 않고 사색을 한다.
사색은 가을에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계절 가운데 특히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가을만이 지니는 계절로서의 특수성 때문이리라.
가을 이란 낱말은 씨를 거두어 드리는 ‘가을걷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가을걷이라는 낱말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씨를 거두어 들인다는 것은 비단 농사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질적 정신적 측면에서 자신의 삶의 씨를 거둬 들이는 것이 바로 사색이 아니겠는가.
사색은 들뜨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는 심리세계로 나타난다. 들뜨지 않는다는 것을 사색하는 주체와 사색의 대상 사이에 그야말로 관조(觀朝)의 경지가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고, 차분히 가라앉는다는 것은 주체의 완전소멸이 아니라 고요한 정신집중을 의미한다.
산골 물에 가을 기운이 모여 있음을 깨닫는 경지, 여기에 나는 사색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을이 되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일상적 사고의 발상인 천고마비에 대한 생각과 산골 물에 가을이 모여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느낌뿐만 아니라 그 의미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고즈넉한 가을 산사(山寺)에서 고요를 느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그러한 삶을 나는 오늘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