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형화된 말과 행동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드러내 보이는 태도 그자체가 진실인지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겉으로 드러내는 태도는 하나의 해석으로 일치하는 듯이 보이지만 좀 더 그 내면을 살펴보면 좋은 평판을 쌓으려는 의도, 주변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분명히 관심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망과 같은 다양한 이면의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행위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그 주위를 맴돌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화주의는 공격성향을 감추고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욕망은 권력욕의 가면일 수 있으며, 공손함은 모멸감의 위장된 표현일 수 있으며, 어떻게 얼마나 반대하느냐는 역으로 얼마나 옳고 정의로운 진실인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눈에 비친 외양과는 상반되는 이면의식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단순해 보이는 행위일지라도 스스로를 위장하거나 속이고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 때문에 표출된 모든 행위의 이면성을 유추해보고 겉모습과는 다른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실을 거짓된 의식에 감추어 자기 포장을 하는데 익숙한 존재가 인간들이므로 마주하는 현상을 명확히 이해하고 올바른 수용을 하려면 숨겨져 있거나 의식되지 않는 이면의 참의미들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지혜로운 삶을 갈망한다면 순전한 억측과 정확한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를 늘 가늠해 보아야 한다. 다만 항상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해석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의 요인들이 모두 사라질 때도 동일한 말과 행동을 지속한다면 그 진실은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여러 가지 이질적이고 당혹스러운 현상들을 자세히 통찰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돋보이게 하려고 소비적인 과시욕을 보이고, 현재의 자신보다 한 단계라도 더 높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단계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오인 받지 않으려고 외양을 번지르르 하게 치장하곤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장식적이고 비생산적인 외양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진솔한 자기 모습보다 더 돋보이는 의미를 부여받고 싶어 하는 의식이 일반화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성의 됨됨이를 갖춘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를 천박한 짓으로 여기며 경멸한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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