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펴본바와 같이 호남 차별 문제가 씨족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분명한 답을 구한 셈이다. 관련하여 전라도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이던 인심이 좋거나 나쁜 것은 씨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상 사회 문화적 요소가 오염되어 나타나는 병폐 현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인심이 좋지 않다고 알려진 곳은 어디가 있을까? 대표적인 곳이 서울이다. 그곳은 눈 없으면 코 배어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심이 나쁘다는 곳이 바로 서울이었으며 다음으로 개성상인을 들 수 있다. 개성 사람들은 일본 침략자들조차도 당해 내지 못해 조선 전체를 일본 자본이 장악했지만 개성만큼은 일본 자본가들이 침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밖에 지역으로는 경기도 깍쟁이로 소문난 평택, 수원, 그리고 이천, 양주,를 들 수 있는데 이런 지역들의 공통점은 낯선 이방인들인 외부 사람이 많이 왕래 한다는 특성이 있다.
개성의 인심이 좋지 않았던 것은 개성 인삼을 매개로 하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국제 무역 도시로서 외국 상인들까지 넘나들며 주변 국가들의 중개 무역이 어우러졌었던 고대부터의 국제시장 기능으로서 고려, 조선 초기의 왕도이며 수도(首都)였다. 서울 인심이 안 좋은 것 또한 조선의 수도(首都)로서 한양은 500년간 한민족의 중심 도시였으며 일본 침략 수탈을 36년간이나 견디어 냈고 1945년을 기점으로 미국 문화가 쏟아져 들어왔으므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도 국제화에 가깝도록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일원 또한 부차적으로 나쁜 인심이 오염된 이유는 한양이 서울로 이름만 바꿨지만 자동차 문화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서울에 가기 위해서는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가더라도 반드시 경기도를 거쳐야 서울에 입성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고 해서 그게 인심 나빠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와 관련하여 좀 저속하지만 민속 야담하나 소개해 보겠다. 근대사에서 최초로 삼국을 통일한 대표적인 신라계의 왕도인 경상도는 인물도 많지만 부호들이 많기로 꼽는데 대체로 경상도 사람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욕이 강해 서인지… 공부를 많이 했고 과거에 급제하여 조정 중신들의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그 실례로 안동 권씨 김씨 등의 경상도 문벌들이 조선 조정을 좌지우지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비례하여 사기꾼 건달들도 만만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많이 지난 조선시대 까지도 그 기질은 살아있어서 조선의 관료나 재산가들의 분포가 경상도 지방이 다년 앞선다. 그러한 경상도라 하더라도 꼭 상류층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느 지방이나 마찬가지로 가난하지만 머리는 좀 되는 친구들이 있게 마련이라서, 그들 가운데 글공부를 열심히 한 청년들 세 명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떠나게 되었는데 넉넉지 못한 살림에 근근하게 마련한 노자 돈이 경기도 지방에 다다르자, 바닥이 난 것이다.
그들 세 사람 중에 하나는 공부보다는 머리가 뛰어나 잔꾀를 부리는 모사에 능한 친구가 나서며 일갈하는 말이 ‘돈이 떨어지면 그게 바로 거지이니 지금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과거 시험을 못 보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거지 신세를 면하기는 어렵다’라고 윽박지르며 거지탈출 작전을 짰던 것이다. 이 친구들은 수원 지방에 이르러 그 지역에서 돈이 많기로 소문난 부호가 누구인지를 수소문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부잣집 양반 댁을 알아내어 곧장 그 댁으로 당당하게 찾아 갔다. 문간에서부터 큰 소리로 ‘여봐라’를 외치자, 집안 단속하는 종속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나와 어디서 오신 뉘 신지를 물었고 이 건달 놈은 그럴듯하게 말했다.
‘나는 경북 안동김씨 가문의 00대감 자제인데 한양으로 가는 길에 날이 저물었으니 양반 체면에 잡것들 머무르는 봉로(奉路)방에서 잠잘 수는 없어, 이 지역에서 덕망 있다고 소문난 너의 집으로 찾아왔으니 들어가서 주인장께 숙대(宿貸)는 넉넉히 치를 터이니 방 하나 내어달라고 자세히 아뢰어라’ 딴에는 위엄을 갖춰 ‘어 흠!’ 큰 기침까지 했다. 듣고 있던 종속은 돈을 넉넉히 주겠다는 이 건달 놈의 허풍에 홀딱 반해 심부름을 잘 하면 쇠푼(‘팁’)도 생길지 모른다는 욕심에 앞뒤 잴 것 없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주인께 전달하며 이런 기회에 안동 김씨 가문과 교통을 트면 벼슬길이 열릴지도 모르고 더욱이 숙대를 넉넉히 준다더라고 주인이 좋아할만한 말들을 보태가면서 동의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