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서점 운영 9년 만에 처음으로 책방 월세를 제 때, 흔쾌히 내본 것 같습니다. 모두 다 한강 작가과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이죠, 뭐”
노벨상 이후 서점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책방 주인이 수줍음 절반, 감사의 마음이 절반 섞인 미소로 화답했다. 광주 충장로 광주극장 옆 20평 남짓한 독립서점 ‘소년의서(書)’ 책방 주인 임인자 씨다. 숱한 세월 목마름을 참고 충장로 골목에서 작은 책방을 지키며 365일 지혜의 쉼터 역할을 해온 땀방울에 대해 어쩌면 노벨상이 보상을 해 준 셈이다. 이런 상황이 무슨 자랑거리냐며 인터뷰를 단연코 사양했지만 짧은 시간을 만나봤다.
이 ‘소년의서’ 책방은 한강이 <소년이 온다> (2014년)를 발표하고 두 해 뒤인 2016년에 문을 열었다. 커 나가야 할 아이, 우리에게 와야 할 아이인 ‘소년’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상징화했다. 임 대표는 그 무렵 그가 읽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린 책 <살아 남은 아이>를 팔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독립서점 ‘소년의서’가 탄생한 배경이고 이 서점이 유명해진 이유다.
지난 10월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조용하던 ‘소년의서‘도 북적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시골 가게에 날마다 오일장이 선 것처럼 사람들이 찾아왔다. 대부분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출입구 앞 쪽에 노벨상 특별코너를 마련했다. 널리 알려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 뿐 아니라 미발표작이었던 글을 모은 최근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까지 한강의 소설, 시, 산문을 전면에 진열했다.
고객들은 광주만이 아니라 대구,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오신 분들로 다양했다. 어떤 분들은 책 한권을 읽고 나머지 책을 광주에서 구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상당수는 책을 읽고 난 뒤 삼삼오오 벗들과 함께 5.18 현장을 다시 밟아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직장인이라 연차를 내서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소년의서’ 책방 탄생 스토리를 알고 방문, 한강 작품을 몽땅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한 달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드문드문 청년들이 찾아와 이책 저책 살펴보던 모습이 옛날처럼 느껴질 정도다.
임 대표에게는 좁은 서점 출입문을 열고 줄지어 들어오신 분들을 보며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서점 운영으로 생활에 쪼들리면서도 광주에 이런 의미있는 동네서점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자존심으로 살아왔다.
스스로가 작가이자 문화활동가로 뛰었다. 충장로 역사와 기록을 공유하는 책 <충장디스커버리>도 썼다. 동구청과 함께 동구의 인물을 제정하고 충장상인회와 함께 <충장로 오래된 가게>를 펴내며 지역 문화자원을 콘텐츠로 만들었다. 많은 작가들과 북토크를 진행하고 현실적인 주제를 가지고 독서모임도 계속하고 있다.
임 대표가 함께한 이런 흔적들이 한데 엮여 서점의 날인 지난 11일 (사)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주관하는 ‘제8회 서점의 날’을 맞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장관상을 수상, 주위에 흐뭇한 미소를 던져줬다. 11월 11일은 서가에 꽂힌 책을 의미하는 한자 册을 의미해 제정한 날짜다.
“우리 서점 이름이 ‘소년의 서’ 잖습니까?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의 이미지와 상당이 오버랩돼 유난히 이곳을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 배경이 이곳 전남도청과 충장로 주변이기도 하구요. 상당수는 책을 읽고 난 뒤 당시 배경을 둘러보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들 하셔요.”
임 대표는 노벨상 후폭풍이 단순한 문학 작품을 읽는 독서 열풍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품의 주류를 이루는 배경이 광주5.18이고 그 현장이 충장로 일대란 점은 우리 문학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며 이 자체가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해석했다. 한강 작품으로 인해 광주와 5.18의 의미가 내면적 성숙함으로 완성돼 가고 있다는 풀이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 한달이 지나면서 독서 열기가 하강 곡성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 영원한 광주이고 싶고, 오래 기억되는 책방 ‘소년의서’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