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중앙대 간호대학 명예교수 박경숙=“우리나라에 간호사는 있으나, 간호법도, 간호정책도 없다.” 지난 10여 년간 전국 각지에서 매년 수만 명의 간호사들이 모여 ‘간호정책 선포식’을 갖고 외친 구호였다. 100만 명 국민의 지지 성명까지 받아 간호법 제정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정부와 국회에서 그동안 번번이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지난해 여야 3당이 각각 간호법 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됐다. 그리고 공청회와 네 차례에 걸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의 심의를 거쳐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조정안이 지난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는 코로나 최전선에서 보여준 간호사의 역할과 사명감, 헌신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의사, 간호사 등 모든 의료인들은 의료법의 지배를 받아왔다. 간호법이 별도로 만들어지면 모든 의료인이 각각 독자 법을 요구해 업무 다툼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난무한다. 이는 세계 각국이 의료인 간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별도의 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처사이다.
주변 국가인 일본과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90여 개국 이상의 나라가 간호법을 의사법, 치과의사법 등과 함께 단독적으로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각종 의료기사들은 ‘의료기사에 관한 법률’, 약사와 한약사는 ‘약사법’을 독자적으로 갖고 있다. 현행 의료법의 전신인 국민의료법을 제정할 때만 해도 의사(5082명)의 숫자가 전체 의료인의 절반에 육박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간호사 48만 명, 의사 13만 명으로 간호사가 전체 의료인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간호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의사와 의료기관 위주의 현행 의료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라고 지적되는 이유다. 특히 간호사들이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학교, 요양시설, 어린이집, 장애인·노인복지시설, 산업체, 교정기관 등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간호사 역할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현행 의료법으로는 이처럼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는 간호사의 역할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 간호 현장은 매우 답답하다. 병원에 가면 “나이 든 숙련된 간호사는 왜 안 보이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밤샘 등 3교대근무라는 고된 업무와 열악한 처우로 입사 7년만인 서른 살 전후로 퇴직하는 이유이다. 밤샘 근무에 지치고 임금이 적어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기 일쑤다. 병원에 숙련된 간호사가 많아야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간호사 확보를 위한 법령을 만들고, 환자 안전을 위해 간호사가 돌볼 환자 비율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초고령 시대에는 안정적인 간호사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인인구가 현재 857만 명인 우리나라는 앞으로 4년 뒤에는 1000만 명을 돌파한다. 치매 환자도 100만 명을 넘게 된다. 이런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보건의료체계를 제대로 잘 준비하고 있는 지 의문이다. 질병 치료보다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퇴원 뒤 가정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건강관리와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대안이다. 초고령 사회 문턱에서 “누가 미래의 노인을 돌보지?” 의문에 대답하려면 지금이라도 간호정책의 새 틀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