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작가 임장영=소련과 중국 헝가리 등 공산권 국가와 수교를 맺은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는 한국 현대사의 지평을 넓힌 제2의 건국이었다. 군부 출신 대통령인데도 과감하게 공산권 수교를 밀어붙인 그의 역사적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필자는 이 사실 하나로 마음에서 인간 노태우를 용서했다. 그들 신군부 권력욕의 총탄에 눈 부릅뜨며 죽어간 영령들, 광주민중항쟁 원한의 피를 그는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병상에 계신다. 그의 아들이 광주민중항쟁 영령들 앞에 머리 숙여 참배했던 사실을 평가해주고자 한다. 열 개중 단 하나 때문에 나머지 잘못이 용서되는 차원으로 통치력을 분석하는 자세를 가져본다. 그렇게 해야 역사의 발전이라는 큰 틀을 이해하며 넘을 것 같아서이다.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 역사 중에서 만약에 그 역사가 우리에게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물론 그 반대의 역사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약에’를 넣어서 읽지 않는다면 역사 공부의 ‘실용’은 무엇인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헐벗고 억압받던 보릿고개 민중을 측은케 대하기는커녕 빨갱이로 몰며 정권 챙기기에만 몰두했던 독립국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수백만 민중의 목숨을 앗아간 6.25전쟁을 겪은 대통령이면 뭐가 달라도 달랐어야 했다. 그의 단 하나, 역사발전에 기여한 그 무엇을 지금도 찾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 장군의 불법 쿠데타를 의미 있는 쿠데타로 필자는 인정해 왔다. 적어도 박정희 소장은 헐벗은 민중의 배고픔을 알아줬던 지도자였다. 그것 하나로 박정희 대통령은 충분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인간 박정희를 정치적으로 팔아먹었을 뿐 그의 명예는 본질적으로 챙기지 않았다. 인간 박정희의 가슴속에서 수없이 일었을 친일 경력과 독재정치의 자책을 그들은 되레 자랑하듯이 방어하고 나섰으니, 그의 딸마저 그렇게 했으니, 그는 지하에서 이를 한탄하며 울고 있을 것이다.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정치가 반성할 일이지 그것이 꼭 자랑해야 될 일이냐고?
간접적으로 나타난 이명박 대통령의 승부기질은 ‘좌우지간 이기고본다’였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승리는 과정의 무리수를 충분히 보상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성사시키면 장땡이다. 그다음은 이익을 실력대로 나누는 이익 지상주의 시스템만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신세계, 그런 맥락이 그의 기질이고 통치 철학으로 행사되었다. 나중에 대두될 법리는 이미 노리는 효과를 달성한 후이기 때문에 신경 쓸 것 없다는 추진력, 그런 기질로 취임초기 참여정부임명 공직자 교체,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 삼성그룹 다그치기, 자원외교 밀어붙이기를 하였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단순 용감한 기질은 이미 머릿속에 꽂혀진경험 범위 내에서만 확장이 가능했다. 고도 산업화성장 시기에 국민에게 돌아갈 성장의 몫을 권력의 힘으로 중간에서 가로채는 구조가 학습된 머릿속에 전두환의 일해재단 설립과정은 재벌을 요리하는 신의한수로 꽂혔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어 노심초사한 결과는 일해재단 설립의 재현이었다. 국가의 정보기관이 사적 관리기관으로 인식되는 정신상태. 최순실이라는 비선 인물의 등장, 그 겁없는 철딱서니는 결국 탄핵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남겼다. 박근혜 이명박 두 대통령의 역사발전이라는 개인의식은 강바닥의 돌과 모래만큼이나 하찮게 취급되어 졌다. 나는 그분들의 단 하나 무엇을 찾고자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통치기간 만큼이나 자세히 들여다 보고있다.
현 대통령 문재인의 외형 스타일에 감탄한다. 그는 6.25전쟁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필자 역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문재인 역시 가난한 부모를 두어 가난하게 성장한 비슷한 연배이다. 문재인은 부잣집에서 부러운 것 없이 성장한 사람들이 풍길 것으로 여겨지는 유연함과 포근함이 묻어 있는 귀공자 스타일이다 (부자 부모를 뒀다고 다 귀공자 스타일이 되는건 아니겠지만). 실제 부잣집에서 부러운 것 없이 성장한 안철수에 비하면 속 넓이가 대인과 소인의 냄새로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이다. 내가 내자신 하는 짓을 더듬을 때 가난한 성장배경이 천형처럼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서 소름이 돋듯이 문재인의 유연한 스타일을 느낄 때마다 희망의 소름이 돋는다. 문재인 그가 말한 불비불명(不飛不鳴)을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이며 또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에 입문에서 현재까지 보인 그의 행보는 유연함과 따뜻함 그리고 불비불명 이었다. 쉽게 내보이지 않지만 내 보이고자 결심했다면 끝장을 보는 철 같은 사나이로 나는 그를 읽었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불비불명을 좌우명으로 삼는 그의 철학에서 그가 통치하는 대한민국이 뭣이 달라도 다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