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신안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재흥=작년에 송가인으로 시작된 트로트 열풍이 드세다. 문화계의 작년 수확은 아무래도 트로트계에서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송가인과 아이돌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BTS(방탄소년단)라고 해야겠다.
송가인은 어느 종편채널의 미스트롯 경연 대회 출신으로 우리 고장 진도 출신이다. 전국의 지방 행사에 단골 초청 가수로 그 행보를 넓혀가는 송가인은 그녀의 출연 유무에 따라 행사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송가인 못지않은 또 하나의 최고 상품이 예측되고 있으니 바로 미스터트롯의 임영웅이다. 준결승을 마친 현재 그는 당당히 1등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물론 나머지 6명의 상대도 대단한 실력을 갖춘 상대들이지만 유튜브에 조회된 숫자를 보면 임영웅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런 노래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그는 단 한 번의 열창으로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우리의 안방을 단숨에 흔들어 버렸다.
마스터 심사단으로 참여한 원곡 가수마저 그동안 잘 못 불러서 미안하다고 할 정도이니 그의 가창력 수준은 실로 대단하다.
사실 트로트는 그동안 일부 특정 세대만이 선호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노래였다. 10대가 이런 노래를 부르면 애기 늙은이 취급을 받았으니 20대에서도 쉽게 부르지 않았다.
처음 시작은 유럽 음악계의 fox-trot라는 빠른 2박자의 댄스 음악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가요 ‘엔카’로 변형 도입되면서 우리 특유의 트로트로 발전했으니 전통가요라는 명칭으로 이해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트로트를 비하하는 뽕짝이라는 말의 어감이 싫어서 별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트로트야말로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부모님 세대를 아우르는 한 맺힌 노래 아닌가.
1930년대에 트로트는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 고복수의 ‘타향’,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등으로 시작됐다. 단조 5음계의 2박자가 대부분이었던 트로트는 그 당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뼈속까지 들어찬 가난에 대한 한(恨)을 담은 가사들이 많았기에 일터와 가정에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었다.
사실 그 당시 이런 노래들 말고는 듣고 부를 노래도 별로 없었다. 이들 노래는 세상에 대한 욕망, 갈등, 체념, 패배, 자학, 연민 등의 주제를 가슴 절절한 사연으로 담아 우리 부모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애절한 한의 정서가 그대로 부모님의 피와 뼈를 타고 우리의 노래가 된 것이다.
60년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심장을 꿰뚫는 가슴 아린 창법과 중후한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그 뒤로 목포 가수 남진, 하춘화, 나훈아 등으로 명맥을 이으며 지금은 다양하고 독특하며 꺾기 창법이 특징인 우리의 노래가 된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외침을 많이 겪어내면서 끈질기게 나라를 지켜왔다. 그런 질긴 환경이 고난을 극복하는 DNA로 승화·전이되고 다른 이의 아픔을 공감하는 보편적인 인류애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받은 간접 경험을 믹서하고 공유하며 핏줄 속에 잠재우고 있다. 또한 한(恨)의 절절한 슬픔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명랑한 메시지로 전달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간 K-POP에 가려 우리의 전통 가요인 트로트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K-POP과 트로트는 한 뿌리에서 나온 우리 노래의 두 갈래로 봐야 한다. 4박자가 주류인 이들 노래는 외국에서 우리 가수의 노래에 붙여준 종합적인 별칭이다.
주로 10대 청소년들이 빠른 호흡으로 부르다가 중간에 랩도 넣어 부르기도 한다. 우리만의 독창적인 댄스가 가미된 신나는 음악이기에 K-POP이란 별칭을 얻게 됐다.
90년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당시에 앨범 250만장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 뒤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지나며 HOT, 소녀시대에 이르러 국내외에서 탄탄한 기반을 닦은 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차트를 흔들며 드디어 BTS가 배턴을 이어받아 350만장 판매라는 초유의 기록을 갱신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성공 요인은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창의적인 뮤직 비디오, 칼 군무, 전자 음악의 다채로움 등을 기반으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가창력과 멈칫거림이 없는 자기 확신에 찬 메시지 전달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은 바로 창의성, 다양성, 공감 능력의 바탕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초등시절부터 소질과 끼를 닦을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기초학력에 기반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적 발상, 그리고 이런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교육과정의 선제적인 개편, 지역과 시대적 요청에 의한 세분화되고 다양한 방과후 학교 동아리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간 몰라서 부르지 못했던 ‘보랏빛 엽서’를 흥얼거려 본다. 구구절절한 가사가 우리 정서에 맞기도 하지만 심장을 도려내는 애절함이 뇌를 파고든다.
후반부에 이르러 배경 음악마저 잦아들 때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누구나 이런 삼류 소설류의 기억 한 토막쯤은 있을 법도 한 가사도 매력적이다. 밖으로 툭 던져놓은 간절함을 다시 가슴으로 거둬들이는 가창력에 귓속에서는 꿀물이 넘쳐흐른다.
당기고 밀고, 열고 닫고 하는 임영웅의 열창은 등골에 전율마저 감돈다. 그 넘나드는 반향의 울림은 방안을 휘젓다가 밀려오는 작은 파도가 되기도 한다. 또는 나비의 부드러운 날개짓 따라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창공을 비상한다.
몸서리치는 감동의 도가니에 허우적거리다가 급기야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다가 막혔던 혈도가 풀리는 느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수식어로 칭찬을 해도 언어의 한계에 막힐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다.
당분간 그의 노래에 푹 빠질 것 같다. 명불허전, 그가 물들인 보랏빛 감성으로 코로나19에 초토화된 우리의 3월을 위로하고 전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위기 극복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