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골육상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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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골육상쟁' 시작?
  • 광주타임즈
  • 승인 2015.08.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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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설위원 고운석=돈과 권력은 비슷한 속성이 있다. 한데 롯데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세간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는 지배권 부풀리기가 가져다주는 실질적 이득과 가족주의의 문화적 관념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경영은 대체로 3세대 혹은 늦어도 4세대 즈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외국 기업들의 전례이자 일부 한국기업들의 경험이다. 돈과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아버지와 아들 사이, 형제간에도 마찬가지다.

국내 재벌의 후계자도 대부분 권력투쟁 과정을 거쳤으며 이를 통해 재벌이 쪼개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큰 상처를 남겼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2년 3월 7일 잠실 롯데월드에서 롯데그룹 장남의 결혼식이 있었다. 당시 신격호 회장의 나이는 70세였고, 장남 동주씨(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는 38세였다.

남덕우 전 총리가 주례를 맡은 이날 결혼식은 가족행사로 신랑과 신부측 하객 250명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동주씨의 신부는 미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교포의 딸로 동주씨가 미국 내 사업을 하면서 알게 돼 결혼에까지 이른 것으로 알렸다. 신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하쓰코가 장남의 아내는 한국여성으로 맞기를 원했고, 외동딸인 신영자씨(롯데 복지재단 이사장)가 중매를 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동주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롯데 USA 현지법인 부사장으로 경영수업 중이었다.

당시 재계는 동주씨의 결혼보다 롯데그룹의 후계구도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신 회장이 고희(古稀·70세)였고, 장남이 결혼을 하는 만큼 곧 후계승계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재계는 동주씨가 한국 롯데를 맡고, 동생인 동빈씨(롯데그룹 회장)가 일본 롯데를 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빈씨가 일본쪽에 뿌리 내리기 쉬운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동빈씨는 형보다 먼저 1985년 일본의 유력한 부동산사업가의 딸과 결혼했다.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3명의 일본 총리가 참석을 해 화제를 모았다. 그만큼 동빈씨는 일본에 적응하기가 용이했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동주씨는 한국인을 아내로 맞았고, 결혼식 장소로 서울로 정했다. 이를 두고 동주씨가 한국롯데를 맡기 위한 포석이라는 말도 나왔다. 동주씨는 한국롯데의 일에는 거의 관여치 않았고, 서울 방문 기회도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서울 결혼식이 한국 롯데의 후계경영을 승계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한국롯데는 동빈씨, 일본롯데는 동주씨가 맡았지만 한동안 이 구도가 이어지자 형제간 한·일 롯데 분점이 굳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올 들어 동주씨가 가지고 있던 자리에서 하나둘씩 쫓겨났고, 결국 일본에서 기반을 잃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이는 결국 ‘형제의 난’으로 번졌고,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신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제2롯데월드 100층 돌파 기념식에 신회장과 나란히 참석하는 등 동반행보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사태 때는 동생 신 전 부회장의 편에 서면서(본인은 중립 주장) 지난 27일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이 일본행을 결정한 데에는 신 사장의 설득이 주요했다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사별한 데다 사업을 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신 사장을 각별히 아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 사장도 평소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살뜰히 챙긴다고 한다. 하지만 롯데가 아니고도 그동안 재벌 후계승계의 과정은 ‘골육상쟁’을 동반했다. 승자는 아버지도, 장남도 아우도 아니었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통했다. 정치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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