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5·18광주 ‘41년 악연’ 끝내 못 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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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5·18광주 ‘41년 악연’ 끝내 못 풀고 떠났다
  • /뉴스1 발췌
  • 승인 2021.11.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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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증언·자료 5·18민주화운동 기간 광주 방문…“발포 명령 정황”
87년 이후 32년만에 광주 와, ‘사자명예훼손’ 재판…사과는 없었다
5·18민주화운동 때 자식을 잃은 오월 어머니가 전두환 단죄상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때 자식을 잃은 오월 어머니가 전두환 단죄상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타임즈] 1980년 신군부의 핵심으로 5월 광주학살의 최고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끝내 광주와 ‘악연’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전씨는 23일 오전 8시55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향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전씨는 광주와 질긴 악연을 이어왔다. 악연의 시작은 1980년 5월18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80년 5월 비극의 시작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하는 ‘10·26사태’ 이후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이 사건을 수사한다.

전두환은 그해 12월12일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부를 장악하고 1980년 3월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다.

5월 초 보안사는 국내 정세불안을 해소한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전국 대학생들은 ‘비상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5월15일 10만명에 육박하는 대학생들이 서울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 열기가 폭발할 듯 뜨거웠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군 병력 이동 소식이 심상치 않았다. 군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각 대학 총학생회 대표들은 서울역에서 시위를 계속할지를 놓고 고심하다 학교로 복귀하기로 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심야에 군과 충돌한다는 것은 무모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다.

서울역 회군 후 이튿날인 16일 서울 대학가는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다만 광주지역 대학생들만 달랐다.

광주는 전남대와 전남도청 일대에서 “계엄령 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신군부는 5월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동시에 계엄포고령 10호를 발표해 정치활동 금지, 휴교령, 언론검열 등의 조치를 내렸다.

18일 전남대 학생들이 신군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김대중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으로 ‘피의 5·18’은 시작됐다.

19일 새벽 계엄군은 광주에 증파됐고, 도심 곳곳에서 시민과 계엄군의 격렬한 대치와 충돌이 일어났다.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하던 계엄군은 결국 5월27일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한다.

 ■ “전두환 5월21일 광주 방문했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군 최고 실권자였던 전두환이 광주의 시위 진압상황을 보고받았다는 다수의 증언과 자료 등을 토대로 전씨가 최종 발포명령자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전씨가 광주를 처음 방문한 것은 80년 5월27일 도청 앞 집단발포 6일 전인 5월21일인 것으로 보인다.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씨는 2019년 5월 검찰 조사에서 “80년 5월21일 정오께 전씨가 광주 K57(제1전투비행단)에 왔다는 첩보를 미군 상부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80년 당시 서울 공군 706보안부대장 운전병이었던 오원기씨도 “80년 5월21일 오전 전두환씨를 용산 헬기장에서 직접 봤다”고 증언했다.

‘1980년 기갑학교사’에는 5월21일 오전 8시 진돗개 하나가 육군보병 전투교육사령부 지역에 발령됐고, 오전 11시 M-16 소총과 권총 실탄 분배가 완료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전씨가 집단발포 전인 21일 광주를 찾아 회의를 열고 ‘발포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 5월학살 후 광주 와 “더이상 광주사태 논의 말라”
전씨가 공식적으로 광주에 등장한 것은 80년 9월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 찬탈에 성공한 전두환은 9월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선거인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11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첫 방문지로 호남을 택했다.

전씨는 그 해 9월5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을 방문해 전남도지사로부터 영산강 홍수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전씨는 당시 브리핑을 받은 후 “광주사태가 국민들의 단합된 노력으로 해결돼 만족스럽다. 이제 더 이상 광주사태를 논의하면 안 될 것”이라며 “이 지역이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고 다른 지역보다 더 모범적이 돼라”고 했다.

그해 11월6일에는 전남지역 민정시찰 차원에서 다시 광주를 찾아 이례적으로 광주교도소를 들렀다.

광주 북구 각화동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가혹한 살상행위와 암매장이 자행된 장소로 지목됐던 곳이다. 전씨는 당시 교도관들에게 격려금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 80년 5·18 이후 18차례 방문…사과는 없어
전씨는 이듬해인 1981년 1월 간접선거를 통해 12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월18일 전씨는 광주를 또 방문한다.

당시 ‘광주항쟁구속자가족회’ 가족들은 전씨 부부가 옛 전남도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YMCA 앞에서 기다렸다.

전씨 부부가 탄 차가 모습을 보이자 정현애씨(오월어머니회 이사장)를 비롯한 가족들이 차도로 뛰어들었다.

전씨는 환영 인파인 줄 알고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잡았다가 “구속자를 석방해달라”는 소리에 놀라 차를 후진해 전남도청으로 들어갔다.

전씨는 이듬해 1982년 3월10일 또 한차례 광주를 찾았지만, 성난 민심이 무서워 광주에서 숙박하지 못했다.

당시 전씨 부부는 광주 인근인 전남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한 뒤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 민박 기념비는 1989년 1월13일 광주전남민주동지회에 발견됐고 동지회는 민박기념비를 깨뜨려 5·18영령들이 잠든 민족민주열사묘역(구 망월묘역) 앞 땅에 묻었다.

지금도 비석 옆 안내문엔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 비석을 짓밟아 달라고 적혀 있다.

전씨는 1987년 2월4일 대통령 임기 말 광주시청을 방문해 동백나무를 심기도 했다.

이 동백나무는 새로 옮긴 광주시청사 앞에 옮겨 심었으나 2007년부터 시들기 시작해 2011년 8월쯤 자연 고사해 폐기처분됐다.

전씨의 대통령 임기 중 마지막 광주 방문은 1987년 10월13일 열린 제68회 전국체전 개막식이었다.

전씨 부부는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뒤 사이클 경기를 지켜봤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전씨는 1980년 11대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18차례 광주를 찾은 것으로 나타난다.
 
■ 87년 이후 32년 만에 광주 방문…사자명예훼손 재판
전씨는 87년 이후 한동안 광주를 외면했다. 그러다 32년 만인 2019년 3월11일 광주를 찾았다.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다. 재판 출석을 위해 전씨는 3차례를 광주 법정에 출석했다.

첫 출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했나”,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할 건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아! 왜 이래”라며 짜증을 냈다.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에선 75분간 5차례나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두 번째 출석은 지난해 4월27일이다. 전씨는 광주지법 후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섰고 이번에도 사죄는 없었다.

세 번째 출석은 지난해 11월30일 1심 선고공판이다.

전씨는 이번에도 출석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법정에선 또 꾸벅꾸벅 졸았다. 1심 재판부는 전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씨의 마지막 광주 방문은 지난 8월9일 항소심 재판이다. 이날 전씨는 이전과는 달리 눈에 띠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법정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호흡곤란을 호소해 재판은 30여분만에 종료됐다. 전씨는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부인 이순자씨와 광주지법을 빠져나갔다. 5·18에 대한 사죄는 끝내 없었다.

오월어머니들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라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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