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년前 ‘제주 四月의 봄’은 어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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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년前 ‘제주 四月의 봄’은 어디에서
  • 광주타임즈
  • 승인 2018.04.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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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광주타임즈]한국지역 연합방송 회장·시인 나일환=꽃피는 춘 사월 봄빛도 따스하다. 화조풍월(花鳥風月) 사월은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세월도, 인간사도 들뜨게 한다. 사월의 봄은 화사함만이 아닌 가슴 아픈 일들도 있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온다. 봄을 가져다주는 섬, 제주도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풍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한 많은 섬이기도 하다. 탐라국 제주는 역사적으로 보면 유배지로, 볼모지로 육지로부터의 차별과 냉대 속에 홀대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저항 의식이 유달리 강한 섬이기도 했다.

제주도는 외부로 부터 오는 밀려오는 세력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그것은 역사적·지리학적으로 특수한 환경이 평안함 보다는 불안한 시대적 상황을 만들어내 피해와 고통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돌아보면 구한말 방성칠과 이재수의 난, 일제 시절 때 잠녀 투쟁, 제주 4·3 사건이 있다. 오늘은 우리의 불행한 역사로 인해 무고한 희생을 추모하는 제주 4·3사건 63주년을 맞는 날이다. 현대사에 있을 수 없는 커다란 비극이다. 봄이 익어가는 사월에 눈이 내린다. 차가운 기온을 동반한 춘 사월의 기온이 차가운 날씨로 변해버려 봄을 만끽하는 상춘객들의 노여움을 산다. 그 노여움이 바로 제주의 노여움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꽃피는 사월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제주도민들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은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제주 4·3 사건은 8·15광복 이후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선거에 반대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봉기로 남로당 잔당과 과 진압군의 양민을 대량 학살했던 사건이다. 당시 제주는 해방의 기쁨을 만끽 하지도 못하고 미군정에 대한 불만과 귀향한 제주도민 들의 인구 증가, 실직사태, 흉년으로 인해 사회적 기운이 흉흉했다. 또한 일제시절에 경찰들이 미군정 경찰로 활동하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도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찰관, 우익청년단체, 관리에 대해 민심이 요동을 치고 기록에 의하면 남로당 세포들인 제주도 4·3 봉기의 지휘자였던 김달삼의 지령으로 봉기의 진압군 사령관격인 박진경을 죽인 것을 시작으로 발생했다.

4·3사건은 역사적으로 제주 지역의 중앙 지배 권력에 시달려온 저항의식,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처절한 대응 등이 그 요인이 된 처절 하리 만큼 끈질긴 억압과 모순에 대한 저항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보면 제주 4·3 사건(濟州 4·3 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만 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명을 포함해 1만4000여명이 사망 했다고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결과에 밝히고 있다.

한라산을 본거지로 하여 유격전형태로 계속되어 진압작전의 토벌대는 무차별 민간인들과 유격대를 가리지 않고 집단 학살하여 수많은 인명이 학살했다. 제주 4·3사건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냉전과 분단의 아픔으로 일어난 4·3사건은 진압과정에서 평화가 절단 나고 아름다운 풍광은 파괴되어 섬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흘러버린 시간들을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억울하게 숨진 분들에 대한 진상규명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분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절실하다.
우리는 예부터 사자의 장례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다. 그런데 제주 4·3사건 때 숨진 선량한 국민들의 죽음은 아직도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 진실 앞에 감춰져 현제도 진행 중이다.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자 하는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4·3제주 사건 때 숨진 국민들의 명예회복 과 그 대책이 빨리 이루어져 억울하게 숨진 분들과 그 유족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또한 제주 4·3사건은 이름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있으니 더욱더 한심스럽다. 제주도 폭동 사건. 제주 4·3사건 등 의견이 분분하다. 사태인지. 폭동인지, 항쟁인지 역사 앞에 분명히 밝히고 제주민의 한을 매듭지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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