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양심(良心)
상태바
허울뿐인 양심(良心)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6.20 1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 양심(良心)이란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속마음을 일컫는 말로 인간에게 아주 친숙하게 인식되어지는 용어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겠지만 인간이란 원래 온정적으로 보이지만 냉혹하고, 윤리적인 듯이 계산적이고, 유약해 보이지만 난폭하고, 숭고한 척 하지만 유치하고, 맹목적인 것 같지만 의도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본능적으로 대응하는 삶을 살고 있는 존재다. 그렇지만 이미 내재화된 본능을 추구하려는 속성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한대로 양심의 규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매사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는 없다.

이런 세태 속에서는 제 각각의 기준이 도덕이고, 제 각각의 취향이 윤리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온통 이성적이고 양심적일 수 없는 인간사회에서는 무한히 양심(養心)되어져야 양심(良心)은 지켜낼 수 있다. 그러니 사회가 바라는 양심적인 세상이란 아직까지 이루어내지 못한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겪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버거운 현실에 대한 분노의 독화살을 맞고 각자의 마음 밭에 의도적으로 한을 심어왔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버릴 거라는 공포 때문에 결연한 각오로 주변을 쥐어뜯고 싶은 자책감에 속상해하고 분노하면서도 양심적이기를 기대하고 또 후회하곤 할 뿐이었다.

이런 체험을 하지 않아도 인간의 속성상 이성과 윤리와는 거리가 먼 비합리성의 환상에 의해 고지식한 무서운 아집으로 엉뚱하게 왜곡된 내면의식으로 양심을 강화하게 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양심에겐 속세의 맥락을 이해하는 내공이 쌓이면서 세상의 속뜻을 새겨들을 수 있기 때문에 세간의 비난과 원망을 마음에 그대로 새기던 이전 보다 바깥세상이 덜 무서워진다. 이렇게 환경의 영향에 따라 인간적 양심이 전부였던 시절이 끝나면 무엇인가를 지켜야하고, 버려야하고, 바꾸어가야 하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기 내면의 양심만이 생성되어간다.

그러면 본래의 양심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보다 현실적으로 응용이 가능한 논리를 갖춘 규칙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자기 변신을 위한 양심만이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선명하게 비이성적이고 비윤리적인 경험이 내면에 각인되면 순수한 양심의 성장은 멈추게 되고 자기식 양심만이 성숙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념적 가치는 전부 위선이고 오직 각자의 내면에서 속삭여주는 내면의 소리만이 진정한 양심일 뿐이다. 하지만 보잘 것 없이 미천한 양심일지라도 그 양심을 비난하고 원망하려면 진정한 사랑과 자비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양심의 질책이 미움과 분노가 진심이라면 마음의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그렇다해도 이 세상에는 완벽한 양심이란 없다.

그래서 늘 분노와 원망 섞인 눈길로 세상을 쏘아보게 되고, 비난과 불평이 난무하는 양심은 틈만 보이면 곧바로 책망과 지탄을 퍼붓고 시도 때도 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사회적 양심에는 성장을 멈추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어서 양심은 시대착오적인 두려움에 떠는 경험을 여실히 하게 한다.

그 결과 세상을 바라보는 일관성 있는 시각이 형성되면서 싸늘한 눈길로 세상을 응징하려는 자신만의 규칙을 고지식하게 세울 때 양심의 변질은 이루어진다. 물론 뒤틀어진 양심을 내야만 하는 사연이야 나름대로 있겠지만 마음속에 새겨진 비뚤어진 양심은 평생 참자아를 괴롭히는 내면갈등의 주범이 되고 만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렇다해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자신만이 받아들일 수없는 양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테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고 모멸감을 자기 혼자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고지식한 내면의 규칙이 자신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처럼 고결해 보이지만 위태롭기 그지없는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양심의 비난에 불안하거나, 가혹하고 냉정한 질타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양심이라는 허울을 쓰고 늘 자신을 못마땅해 하고 비난하고 경멸하려는 그런 어떤 것이 내재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 삶을 이끄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인 ‘심리적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려면 내적 현실인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심리적 현실’을 이해하여 ‘마음의 진실’을 깨닫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운 생활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한히 양심(養心)을 길러 양심(良心)을 지키는 인간적인 삶을 살아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