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메르스 공포' 막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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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메르스 공포' 막는 길
  • 광주타임즈
  • 승인 2015.06.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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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설위원 고운석=피를 토할 것만 같은 기침, 술 취한놈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몸살, 날카로운 손톱이 폐를 쥐어뜯는 것 같은 통증, 이런 일이 생기면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인다. 공포도 일종의 전염성이 있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의 집단공포는 더 더욱 그렇다. 한데 전염병이나 홍역의 발병원인을 어떤 옛 사람들은 귀신 때문으로 여겼다. 그러나 생육신의 한명이었던 추강 남효온은 ‘귀신론’에서 홍역이 귀신 때문에 발생한다는 설을 비판하며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반드시 나쁜즙(汁)을 마시게 되는데 밖에서 시기(時氣)가 부딪치고 악한 독이 안에서 응해서 발생한다”면서 귀신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나마 홍역은 전염병이 아니지만 전염병의 경우 대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병이 발생한 집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현종 11년(1670·경술년)여름 전염병이 발생하자 미수(眉) 허목(許穆)은 서쪽 이웃집으로 피해 무사했다. 2년 후에도 다시 전염병이 돌자 허목은 다시 그 이웃집으로 피병(避病)했는데 이번에도 무사했다.

허목은 “다행이도 강녕해서 아무 병도 앓지 않았다. 날마다 옛 서적을 보면서 옛사람들이 즐기던 것을 바꾸지 않은 것을 기뻐했다”면서 “귀신이 임했지만 나에게 후하게 대우해주었으니 지금 허름한 내 집으로 돌아와서 아랫목 신에게 사례하는 글을 쓴다”면서 ‘서쪽 이웃집 아랫목신(室奧)에게 사례함’이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눈앞에서 죽어가는 대상이 부모형제면 전염병이라도 피하지 못하고 간호해야 했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면 효자나 열부들이 많이 죽었다.

때로는 전염병도 피해가는 인물들이 있어서 화제가 되는데 진(晉)나라 유곤이란 사람이 그런 인물이었다. ‘진서(晉書)’ 효우(孝友)열전’에 따르면 유곤은 두 형이 전염병으로 죽었는데, 또 다른 형인 유비도 위태로웠다. 부모와 다른 아우들은 모두 집 밖으로 피했지만 유곤만은 홀로 남아 유비를 간호하고 먼저 죽은 형들의 영구를 어루만지며 슬피 울었다. 이렇게 한 지 100여일이 지났는데도 병에 전염되지 않고 형의 병까지 낫자 큰 화제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평안도에 전염병(여역)이 자주 발생했는데 중국과 통하는 길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종 19년(1524) 8월경부터 평안도 여러고을에 전염병이 발생했는데 이듬해 2월 평안도 관찰사 김극성의 치계에 따르면 모두 7,724명이나 사망했다. 중종은 평안도에 전염병이 발생하자 내외에 구언하는 전지를 내렸다. 중종은 “내가 즉위한 이래 날마다 죄를 얻을까 경계하고 두려워하면서 다스린 지 이제 19년인데 정성이 부족하고 은택이 극진하지 못해서 “장마와 전염병이 서쪽 변방에 퍼지고 있다면서 구언했다. 중종은 여기서 “나의 모든 잘못과 조정 밖에서 관계되는 것을 들은 대로 말하라. 내가 모두 받아들이겠다”(‘중종실록’19년 10월2일)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사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전염병이 돌면 공포가 엄습하고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기 마련이다. ‘순자(筍子)’ ‘대략(大略)’ 편에는 “구르는 구슬은 사발에서 멈추고 유언비어는 현명한 사람에게서 멈춘다”하고 있다. 목은 이색의 시에 ‘안석위기(安石圍基)’라는 시구가 있다. 안석이 바둑을 둔다는 뜻인데 진나라 정토대도독 사안이 전진의 부견이 백만대군으로 쳐들어와서 온 나라가 두려움에 떠는데 태연히 바둑을 두어 진정시켰다는 이야기가 ‘진서’ ‘사안열전’에 실려 있다. 진나라 사람들이 공포를 거둔 데에는 사안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메르스 때문에 집단공포가 거국진공상태로 번지고 있다. 중종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부터 나서서 국민들에게 정부의 무능을 사과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국민공포나 유언비어를 진정시키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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