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현충원의 눈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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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현충원의 눈물들
  • 광주타임즈
  • 승인 2015.06.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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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논설위원 고운석=필자가 임란 전적지인 충남 금산의 와평들을 돌아보고 오는 길에 7백 의총과 대전 현충원을 참배했다. 한데 현충원에 “당신 곁에 가거든 늙었다고 물라 보지 마세요” 등 ‘하늘나라 우체통’ 개설 후 가슴 저미는 사연들이 보관 돼 있었다.

눈여겨 보니 ‘사랑하는 아들 대한아 며칠동안 여름비가 줄기차게 내리는구나. 얼마전 대전에 큰 비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네가 있는 곳은 괜찮을까 걱정했다. 그동안 네게 아빠가 소식 전하는 것이 뜸했지? 새 일자리를 얻느라 바빴기 때문이란다’(1997.6.25) 대한아,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보고 싶은 너는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네가 가고 없는 10년은 슬픔의 날들이었다. 오늘은 네가 태어난 날. 엄마 아빠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할 거야.’(2002년 5월, 생일축하카드) 경북 경산시에 사는 전태웅(70)씨 부부는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매달 3~4통의 편지를 보낸다 한다. 수취인은 24년전 숨진 아들 고(故)전대한 이병이다. 전 이병(당시 21세)은 군 복무중이던 1991년 12월 사고로 순직해 1992년 2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아버지와 엄마, 누나, 동생, 조카 등 가족 모두가 지금까지 7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 가족이 보낸 편지는 지금까지 대전 현충원 서류철에 묶여 있다.

이 편지들이 이제 안식처를 찾게 됐다. 대전 현충원이 2012년 6월 1일 개설한 ‘하늘나라 대형 우체통’은 국가를 지키다 먼저 떠난 사람들과 이 땅에ㅔ 남은 가족들을 이어주는 통로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생일 축하 소식을 전하고 싶은 부모, 남동생에게 보내는 누나의 애틋한 사랑이 이 ‘하늘나라 우체통’을 통해 전달된다.

우체통 개설식에는 2011년 경기도 용인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던 고 차선우 집배원이 현충원 최초로 안장되었는데 그의 유족들도 참석했었다. 차씨의 누나는 우체통에 넣은 편지에 “꿈에라도 나와주지, 어떻게 나타나지 않니.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어. 우리 가족 다 같이 만날때까지…”라며 떠난 동생을 그리워했다. 어머니도 “저 세상에서도 우리 아들 바쁘겠구나. 현충원에 하늘나라 우체통이 생겼어. 엄마도 열심히 살게“라고 적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사후 현충원에 안장된 할아버지를 위해 고사리 손으로 적은 편지도 있다. 그 편지에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몸속에 총알이 박힌 채 사셨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어요. 다음에 제가 모은 용돈으로 예쁜 꽃을 사서 찾아 뵐게요.”(손녀 채린이가) 대전현충원이 보관중인 파일 속에서는 지난 2003년 12월 유족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도 있다. 알록달록 예쁜 카드에는 “엄마 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 갑자기 준비없이 떠나버려 너무 가슴 아프고 허망해요. 하늘나라는 어떤가요. 엄마 아빠, 우리를 지켜주세요. 실망하지 않고 잘 살게요”(용인에서 딸 현정이가) 군 복무중인 동기가 사병묘역에 안장된 친구에게 2009년 보낸 편지에는 “이강일 잘 지내냐? 네 생일이 벌써 17일이나 지났네. 왜 먼저 갔냐 이놈아. 너무 보고 싶다. 친구야”라고 적혀 있다. 그는 “휴가 나가면 꼭 찾아 갈께…. 날 잊지 않도록 편지 써주마”라고 적었다.

‘하늘나라 대형 우체통’ 행사를 진행했던 아나운서 왕종근씨는 중령으로 군생활을 마치고 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된 선친에 대한 애틋한 정과 그리움을 남겼다. “아버지를 현충원에 모신지 6년이 됐지만 늘 저를 뒤에서 부르실 것 같고, 금방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 같은 마음은 여전합니다”라고 적었다. 연기 감성초 4학년 한 학생은 군복을 입은 늠름한 표정의 군인을 그렸다. 이 아이는 “호국영령을 추모합니다”라고 적었다. 빨리 통일이 돼 6·25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국민 모두가 앞장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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