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년' 이정현 "거절했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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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년' 이정현 "거절했다 시작"
  • 광주타임즈
  • 승인 2012.11.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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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때인 1996년 데뷔작인 영화 ‘꽃잎’(감독 장선우)에서 1980년 광주의 비극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소녀’로 관객들을 울렸다. 1999년 1집 ‘레츠 고 마이 스타’에 수록된 댄스곡 ‘와’로 대중을 홀렸다.

가수 겸 영화배우 이정현(32)이 돌아왔다. 22일 개봉한 ‘범죄소년’을 통해서다. 지난해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박찬욱(49)·찬경(47) 형제 감독의 스마트폰 영화 ‘파란만장’(2011) 속 ‘무녀’로 오랫만에 국내에도 모습을 비쳤지만, 이후 중국에서 주로 활동했다. ‘범죄소년’은 이정현의 한국 활동 재개의 신호탄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미혼모 ‘효승’을 열연했다. 10대 시절 불장난으로 친부도 모르는 아들을 낳은 뒤 세 살 때 친정 아버지에게 맡겨놓은 채 어디론가로 사라졌다가 친정 아버지가 죽자 13년 만에 아들 앞에 돌아온 30대 초반의 엄마다. 그 사이 조손 가정의 비극을 떠안게 된 아들 ‘장지구’(서영주)는 ‘범죄소년’으로 전락해 소년원을 전전하고 있다.

지구와 만난 효승은 처음에는 밝고 쾌활하게 보인다. 그러나 효승의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는 것과 동시에 이정현의 연기 강도 역시 점점 고조된다. 지구가 소년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하던 미용실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얹혀살던 미용실 주인 후배의 집에서까지 내몰리게 됐을 때 미용실에서 이정현이 펼친 처연한 연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비용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저예산 영화’다. 다른 영화의 3개월 분량을 1개월 안에 다 찍어야 했다. 게다가 아역과 신인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강이관(41) 감독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해야 했다. 경험이 풍부한 이정현은 스스로 알아서 잘해주려니, 챙길 여력이 없었다.

“현실상 제 분량은 테이크를 많이 갈 수 없었어요. 두 세 테이크 안에 오케이를 받아야 했죠. 미용실 신 역시 억눌렸던 효승의 마음을 폭발시키는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해가 지고 있어서 동선만 맞춰보고 바로 들어가서 한 테이크로 끝내야 했죠. 배우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제가 티를 낼 수는 없었죠. 오히려 온 정신을 집중하니 좋은 성과가 나오더군요.”

이정현은 이미 연기력으로 일가를 이뤘다. ‘꽃잎’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와’로 한창 날릴 때 이정현이 보여준 묘한 표정과 눈빛은 “이정현, 진짜 신들린 것 아니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게 했다.

“혹시 신들렸다는…”라고 묻자 “에이, 콘셉트였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재미있기도 하면서 감사하기도 했죠. 호호호”라며 발랄하게 웃는다. ‘그렇다면 정말 연기를 잘하는 건데?’라고 생각하는데 마침 이정현의 말이 이어진다.

“박찬욱 감독님이 ‘파란만장’에서 제게 무녀를 맡기신 것도 어쩌면 ‘꽃잎’이나 ‘와’에서의 제 모습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올드보이’로 2004년 제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까지 무대 위 이정현의 신들린 듯한 모습에서 무녀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그만한 연기력의 소유자는 없을 지도 모른다.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하필이면 미혼모, 그것도 대형 상업영화도 아닌 저예산 영화를 택한 까닭은 뭘까.
“강 감독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는데 미혼모 역할인 데다 노개런티라는 거에요. 부담돼서 못할 것 같다고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우연히 TV에서 미혼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죠.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미혼모와 아들 둘이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였는데 보는 내내 정말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때부터는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제가 듣지 않게 되더군요.”
거절했다가 자신이 빠져들어 시작한 작품이다 보니 애정이 남달랐다. 이정현은 강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효승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효승이 처음에는 무척 어둡고 우울한 캐릭터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만일 13년만에 아들을 찾아가 재회를 한다면, 한때 자살기도까지 했던 사람이 아들과 함께 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면 어떨까. 오히려 밝게 보이려고 애쓸 것이고, 자존심 모두 버리고 미소를 띤 채 주위 사람들에게 뻔뻔하다고 욕을 먹을지언정 꿋꿋이 도움을 청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드렸고 흔쾌히 받아주셔서 지금의 효승을 만들어냈죠. 감독님께 감사하죠.”

최소한 효승에 관해서는 이정현의 판단이 옳았다. ‘범죄소년’이라는 다소 암울한 제목과 달리 영화가 보는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한 가장 큰 이유는 효승이 애써 밝아지려는 노력이 절로 느껴져서다. 그리고 밝았던 효승에게 그런 충격적인 비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관객들은 두 모자를 더욱 더 안타깝게 느끼고 안아주고 싶어진다.

이정현은 박 감독과 아이폰으로 ‘파란만장’을 찍을 때의 추억을 이렇게 전했다. “장비가 정말 끝내줬어요. 크레인도 있었구요. 콘티도 완벽했고요. 현장 편집도 가능해서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를 현장에서 바로 살펴보면서 보완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카메라는 정말 작던데요.”

이렇게 말하며 까르르 웃을 정도로 첨단 촬영현장을 경험한 이정현은 ‘범죄소년’의 열악한 상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시간에 많이 쫓겨서 아쉬웠어요. 매일 밤을 새워야 했어요. 그런 힘든 상황에서 잘 견뎌준 영주가 정말 대견해요. 고생한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들 훌륭하죠. 그렇게 고생들 하면서 찍었는데 마침내 영화 한 편이 완성됐네요. 우리 영화가 그야말로 우리들끼리만 아는 영화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모두들 좋아해주시다니 감격스럽죠.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에서 우리 영화를 불러주셨고, 도쿄에서 감독님은 심사위원 특별상, 제 아들 영주는 최우수 연기상도 받았고요. 개봉도 하구요. 이런 것들을 기적이라고 하나요?”

이정현은 “기적이 일어나는 김에 욕심도 좀 부려보고 싶어요”라면서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해요. 제목은 어둡지만 실제로는 휴먼 드라마에요.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작지만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고 청했다.

도쿄영화제에서 상을 못 탄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아니요. 그럴 생각할 겨를 없이 축하하느라 바빴는 걸요. 그런데 이 홍보 책자 속 사진에서 제 얼굴이 왜 영주만하게 나온 거죠. 제가 더 작은데요. 이거 일부러 키운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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