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 명령자·암매장은?” 진실 규명 과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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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명령자·암매장은?” 진실 규명 과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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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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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 공식활동 보고서 공개 - 하
“북한군 침투설, 근거 없는 주장” 거듭 확인
신군부 주도 조직적 은폐·왜곡 전모 못 밝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관에서 5·18 영상물 상영되고 있다. /뉴시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관에서 5·18 영상물 상영되고 있다. /뉴시스

[광주타임즈] 40여 년 만에 진실을 낱낱이 밝힐 것이란 기대 속에서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결실을 내놨다.

희생자 사망 경위와 일부 행방불명자를 찾아내고, ‘북한군 침투설’이 허위임을 재입증하는 등 성과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핵심인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은 끝내 물음표로 남겼고, 뿌리뽑아야 할 조직적 왜곡의 전모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정작 알맹이는 빠진 기대 이하의 결과라는 평이 우세하다.

■ ‘북한군 침투설’은 어불성설

최근 조사위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위는 항쟁 당시 북한군 개입설이 사실무근이라고 판단했다.

극우 논객 지만원씨의 누리집에서 확대 재생산된 광주특수군(일명 ‘광수’)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들의 주장과 실제 사진 속 시민군의 장갑·총기는 일치하지 않았다.

탈북자 등 ‘광수’로 지목된 이들도 일축했다. 지씨는 지난해 1월 5·18 왜곡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 수감 중이다. 다만 광수 투입설의 최초 유포자인 필명 ‘노숙자 담요’의 실체는 경찰 수사로도 밝히지 못했다.

탈북자들이 제기한 북한군 침투설도 자기 과시용 거짓말 또는 들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특히 광주에 침투했다고 처음 주장한 탈북자는 “당시 평양에 있었다”고 실토했다.

국정원은 ‘일부 탈북자의 북한군 침투설은 신뢰성이 낮다’고 평가했고, 항쟁 전후 국내 상황을 주시한 미국 정부도 오래전 이미 ‘허위’로 판명했다.

북한이 쓰는 ‘5·18 무사고 정시 견인 초과운동’, ‘5·18 기계공장’ 등 명칭이 5·18 개입 기념이라는 주장도 논리 비약이었다. 북한에서 ‘5·18’은 1979년 조선노동당 중앙위 5기 18차 전원회의로 통용된다고 조사위는 설명했다.

항쟁 전후 검거됐던 북파간첩 2명은 종교계 포섭 공작 등을 했지만, 오월 광주와 무관했다. 조사위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 간첩 검거 발표에 5·18과의 연관성이 부각됐다고 추정했다.

앞선 여러 차례 정부 조사와 법원 판결 역시 5·18 북한군 개입설을 ‘허위 사실’로 결론 내린 바 있다.

■ 5·18 은폐·왜곡 뿌리는 못 밝혔다

5·18 항쟁을 둘러싼 조직적인 은폐·왜곡·조작 의혹도 조사했지만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조사위는 우선 5·18 진실이 드러나길 꺼리는 전두환·노태우와 하나회 등 신군부가 왜곡 담론을 지시·주도했을 것이라 보고, 다각적으로 조사했다.

1985년 2월 총선 이후 5·18 진상규명 요구에 따라 만든 범정부 기구 ‘80위원회’의 역할을 살폈다. 국회 광주특위와 청문회 대비 차원에서 1988년 차례로 출범한 육군대책위, 국방부 511연구위, 보안사 511분석반 등도 조사했다.

정부 차원 5·18 대응 기구들의 군 문서 변개(다르게 바꿔 고침), 청문회 증인 통제 의혹 등을 두루 들춰봤다.

군·정보기관과 5·18 대응 기구 관계자 47명을 조사, 일부에게서 문서 변개·조작을 인정하는 당사자 진술을 처음 받아냈다. 핵심 관계자는 ‘군 작전문서, 진압 참가 장병 수기를 바꿔 썼다’고 털어놨다.

이로써 보안사 일일 속보철·전교사 상황일지 변개와 누락, 7공수 35대대 상황일지 재작성 등은 정설로 굳어졌다.

그러나 군 작전 문서마다 ‘집단 발포’가 빠진 경위, 보안사 파기 추정 자료 실체 등은 밝히지 못했다. 조사위원들도 ‘충분히 입증 안 됐다’며 조사 결과를 채택하지 않았다.

■ “알맹이가 있나” 시민사회 냉담

광주 시민사회는 조사위 결과보고서를 냉정히 평가했다. 핵심으로 꼽혔던 발포 책임자와 암매장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이 미진하다는 평이다.

여전한 5·18 은폐와 왜곡의 전모도 들추지 못했다. 조사위는 보고서에서 ‘모든 군 작전 문서 상 집단 발포 내용 누락은 처음부터 조직적 은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라고 끝을 흐렸다.

정수만 초대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결과보고서가 다 옳은 내용이라 할 수 없다. 보안대 기록상 계엄군 총기 사격 과정은 분명히 ‘발포 명령’이라 적시돼있는 만큼 이를 반영하거나 다시 조사해야 한다”며 “희생자 규모도 더 들여다봐야 한다. 유족 진술을 종합해 보면 166명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결과보고서를 시민사회가 검증·토론하며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야 한다”고도 했다.

역사 정립과 항쟁 정신 계승에 앞서 근절해야 할 5·18 왜곡이 다시 고개 들 여지를 남겼다는 걱정마저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발포 경위와 책임 소재, 암매장 등 핵심 과제는 규명 불능 결정을 내려 개탄스럽다”며 “이대로 종합보고서가 작성되면 5·18 왜곡을 확대·재생산하는 목소리만 넘쳐날까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에 대한 권고사항 의견 수렴 절차도 졸속 논란에 휩싸였다.

137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원회’는 “부실한 조사 결과도 비판받아 마땅한데, 국가 권고사항 의견 수렴마저 졸속이다”며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면서 의견 수렴 기한을 한 달로 제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다”라고 꼬집었다.

앞으로 한 달간 조사위는 결과보고서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오는 6월까지 대통령·국회에 종합보고서를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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