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쏘았나” 조각난 5·18 진실, 44년 만에 맞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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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쏘았나” 조각난 5·18 진실, 44년 만에 맞출까
  • /뉴시스
  • 승인 2024.03.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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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 공식활동 보고서 공개 - 상
총 쏜 계엄군 2857명 직접 조사
‘발포 명령’ 전두환 정황만 무성
항쟁 과정서 숨진 민간인 166명

[광주타임즈]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조사위)가 감춰지고 조각 나 있던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찾고자 지난 4년간 공식 활동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공개했다.

3일 조사위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위는 항쟁 참여 시민들에게 직접 총을 쏜 계엄군 대상 조사로 희생자 사망 경위 등 대다수 과제에 대해 ‘진상 규명’ 결론을 내렸다.

발포 명령자가 전두환였음을 가리키는 정황은 파악했지만, 자세한 발포 경위·책임자는 못 밝혀냈다.

■ ‘총 쏜 계엄군들’ 직접 조사했다

조사위는 지난 2018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이듬해 12월 27일부터 지난해 12월 27일까지 4년간 공식 활동을 벌였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회 5공·광주청문회, 검찰 조사 등에서 풀리지 않은 의혹을 풀고 국민 대통합을 이루자는 취지였다.

발포 명령자 특정, 행방불명자 소재, 암매장 사실 여부 등 21개 과제에 대한 직권 조사에 나서 기대를 모았다. 특히 그동안 깊게 다뤄지지 않았던 계엄군에 대한 이른바 ‘상향식 조사’를 벌여 눈길을 끌었다.

조사위는 5·18 당시 투입된 계엄군 2만 300여 명 중 2857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 결과 희생자 암매장을 직접 보고 듣거나 직접 실행한 이들의 다양한 진술, 발포 명령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사위는 활동 종료 시점까지 직권 조사 사건을 대부분 진상 규명했다.

다만 6건은 규명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군 발포 경위·책임 소재 ▲암매장지 소재, 유해 발굴·수습 ▲국방부·군 기관·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5·18 은폐·왜곡 ▲전남 일원 무기고 피습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 ▲5·18 작전 참여 장병과 시위 진압 경찰관의 사망·상해 등이다.

■ 발포 명령자는 ‘전두환’ 정황만

조사위는 강경 진압의 책임이 전두환을 가리키는 정황을 다수 발견했으나 구체적인 발포 경위는 밝히지 못했다.

조사위는 당시 군 핵심 관계자 82명 중 절반가량을 조사했다.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과 이용린 정보처 과장은 “전두환에게 (5·18 관련) 총체적 책임이 있다”, “12·12 반란 이후 전두환 지시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등의 증언을 남겼다.

박경석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차장도 “발포 명령은 문서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일급 정보이고 보안사 계통에서 지시가 간 것이기 때문이다. 5·18 총 책임자는 만인이 아는 것처럼 전두환”이라고 강조했다.

문건에서도 전두환의 지시 정황이 재확인됐다. 육군 2군사령부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1980년 5월 23일 자 문건에는 ‘자위권 발동 강조’, ‘閣下(각하)께서 Good idea(굿 아이디어)’라는 손 글씨가 적혀 있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국방장관실 회의에 참석한 전두환은 당시 합수본부장 자격으로 광주 시위 진압 과정을 보고 받았다.

동석한 김준봉 2군 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이 ‘굿 아이디어’라고 쓴 것으로 유력 추정된다. 김 처장은 회의 참석 사실을 시인, 전두환의 강경 진압 지시 정황이 보다 뚜렷해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장 지휘관 중 누가 명시적으로 발포를 지시했는지 밝히지 못했다.

조사위는 5월 20일 밤 ‘진도개 둘’ 발령과 함께 계엄군들에게 실탄이 분배, 이를 발포 명령으로 알아들은 일부가 광주역 앞 시위대에 사격한 것으로 봤다.

5월 21일 오후 전남도청 앞 집단 사격 역시 끝내 결론내리지 못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중령 대대장’ 지시였다는 진술, 애국가와 함께 발포가 시작됐다는 등 증언이 있었지만 자세한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다.

■ 열흘간 항쟁으로 166명 숨져

무자비 진압으로 항쟁 기간인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발생한 민간인 희생자는 166명으로 잠정 파악됐다.

조사위는 희생자들의 사망 유형을 날짜·장소·성·나이·사인 별로, 계엄군 작전에 따라 구분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희생자 166명 중 135명(81.3%)이 총상으로, 17명은 구타 등에 의해 숨졌다. 12명은 차량에 의한 사망이다.

전체 희생자 중 73.5%는 10대와 20대가 차지했다. 14세 이하 미성년자는 8명, 50대 이상 중·장년도 11명에 달했다.

사망 장소를 특정하지 못했던 희생자 47명 중 43명이 어디서 숨졌는지도 밝혔다.

최초 총상 사망자도 다시 규명됐다. 그간 둔기 등에 의한 사망으로 알려진 김안부 열사는 5월 20일 광주역 집단 발포보다 하루 전인 19일 오후 10시 이후 총상으로 숨진 것으로 정정됐다.

계엄군 조준 사격도 밝혀냈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사망자 중 최소 7명은 주변 전일빌딩 등 고층 건물에 배치된 계엄군 조준 사격으로 숨졌다.

조사위는 광주지검 검시 조서에 카빈(시민군 총기) 총상 사망자로 분류된 26명 모두 당시 군 제식 총기인 M16에 맞아 숨진 것으로 바로잡았다.

끝내 의혹으로 남은 과제도 있다. 5월 21일 오후 버스를 몰고 전남도청에 돌진하다 총격으로 숨진 기사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20일 광주역 앞에서 발생한 민간인 시신 처리 협조를 바란다는 군 기록 이후의 일은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위는 추가 희생자 가능성도 높지만 한시 기구로서 활동 제약이 있어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관련기사 추후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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