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락 질서는 민주시민의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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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락 질서는 민주시민의 척도
  • 광주타임즈
  • 승인 2023.08.0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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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광타춘추]박상주 주필=정수리를 태울 듯 내리꽂히는 뙤약볕과 잠시만 움직여도 비가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염천의 8월. 폭염의 위세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도시를 떠나 산과 바다, 해외로 떠나는 피서객들로 고속도로와 인천공항이 북적인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들 피서지의 모습이 예년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가지요금과 교통체증, 주차난, 넘쳐나는 쓰레기, 호객 행위, 청소년 탈선행위 등이 그것이다. 피서객들이 떠난 휴양지에는 술병과 음식물쓰레기, 담배꽁초, 폭죽 잔재물, 비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가히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피서(避暑)란 말 그대로 시원한 곳으로 옮겨 더위를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잠시 피하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회복을 꾀한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기껏해야 부채가 냉방기구의 전부였던 옛날은 어땠을까.

다산 정약용이 지은 소서팔사(小署八事)라는 시에는 활쏘기가 힘든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무더위에 밤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소나무 둑에서 즐기는 활쏘기를 피서 중의 피서로 뽑았다.

또한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시원한 물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청량한 강변에 있는 누각에서 친구들과 투호 놀이하기, 연꽃이 만발한 넓은 연못에서 뒷짐을 지고 빨갛고 하얀 연꽃을 바라보는 것도 한순간에 더위를 날려버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에 시를 지으며 지내기와 달밤 물가에서 발 씻기로 시원한 계곡물이나 혹은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발을 담그노라면 어느덧 더위가 물러간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기계를 이용해 더위를 억지로 피하려고만 하는 현세에 비해 참으로 운치와 풍류가 넘치는 피서법이다.

지난 반년간 열심히 일하고 모처럼 가족과 함께 즐기는 피서는 업무에 지쳤던 직장인들에겐 금쪽같은 회복과 재충전의 기회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챙 넓은 모자, 선글라스, 수영복이 있어야만 기분인가. 쪽빛 바다와 야자수 아래 걸린 그물침대가 있어야만 맛이던가. ‘텅 빈 고요 속에서 맞이하는 충만한 서늘함’과 같은 선조들의 다양한 지혜가 시대는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가치가 있다면 본받아 잘 활용하는게 건강이나 경제적 측면에서도 모두 유용하고 멋진 피서 방법이 아닐는지.

여름의 정점이자 무더위의 한 가운데서 맞는 휴가철. 건전하고 올바른 피서 문화 정착은 피서객은 물론 지역 주민·상인·지자체 등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행락 질서 준수 여부는 민주시민의 척도라는 말이 암시하듯 행락 질서 문란은 우리가 민주시민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행락 질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환으로 해외로 나가든 아니면 국내에서 피서하던 피서의 후유증 없이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돌아오는 휴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러한 피서기의 뒤안길에는 피서 휴가를 포기한 채 어려운 현실과 굳건히 맞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활 현장에서 비지땀을 쏟고 있고,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기반 시설과 농경지 침수 및 유실 등 큰 피해의 아픔을 겪고 있는 수재민들을 비롯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피서 성수기 극심한 폭염에 이어 태풍 ‘카눈’이 한반도 한가운데를 관통할 예정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안전점검 등 대비를 철저히 해 큰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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