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증거조작에 ‘표변(豹變)’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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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증거조작에 ‘표변(豹變)’ 생각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04.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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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고운석= 사람들은 남의 눈을 피해 악을 행하지만 그 악은 숨어 있기를 싫어하니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를 인정하면 죄가 작지만, 그 잘못을 숨기고 감싸면 죄는 더 커지게 된다.

한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법정에서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유우성(34)씨의 출입경기록 입수 경위에 대해 수차례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는 3월 16일까지도 재판부에 정식으로 거짓말을 정정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중국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지난해 10월 중순 국정원을 통해 입수했다. 검찰은 지난해 6월 대검을 통해 중국 지린성 공안청에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중국측은 “발급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자 석달 반쯤 지나 국정원이 들고 온 게 문제의 출입경기록이다. 이 출입경기록은 대검의 공식 요청과는 전혀 무관하게 국정원이 비공식루트로 입수한 것이다. 그런데도 공안1부 검사들은 공판에서의 진술과 법정에 낸 의견서 등을 통해 6회에 걸쳐 ‘대검을 통해 공식 루트로 출입경기록을 입수했다’고 재판부를 속였다.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중국정부가 2월 14일 검찰측 출입경기록 등 자국 공문서 3건이 위조됐다고 밝힌 지 이틀 뒤 검찰이 이 문서의 입수경위에 대해 ‘국정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받았다’고 밝혔음에도 ‘대검을 통해 문서를 입수했다’는 거짓말을 지난 16일까지 정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검사들은 법정에서 거짓말한 사실이 들통 난 뒤에도 ‘대검이 지린성 공안청에 공문을 보낸 것은 사실 아니냐, 또 허룽시 공안국이 정보협력 차원에서 문서를 발급한 것(으로 우리들이 인식한 것)도 사실 아니냐. 따라서 우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여러 말들이 떠돈다.

말은 시간이라는 강물 위를 쉬지 않고 흘러간다. 도중에 언중(言衆)의 입길에 오르내리지 못해 아예 통째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원래의 뜻이 정반대로 바뀌기도 하며,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은 왕조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어의(語義)를 얻었다. 즉 신분에 관계없이 ‘점잖고 착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시비가 붙었을 때 “야! 이 양반아!” “양반이라니, 얻다 대고 양반이야?” 라는 대거리에서처럼 경멸의 의미가 담긴 호칭으로도 통용된다. 도박판이나 시장 바닥에서 흔히 보고 현대 정치판에서도 흔히 보는 언행이나 태도 등이 돌변해 딴 사람처럼 구는 것을 ‘표변’이라고 한다. 평소의 소신과 약속 따위를 헌신짝처럼 내 팽개치는 지극히 좋지 못한 행태를 이르는 말이다.

‘표(豹)’는 표범이니 표변은 표범처럼, 또는 표범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의 본래적 의미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 표범이 여러 차례 털갈이를 하면서 부스스한 모습이 아름답게 바뀌듯 몰라볼 정도로 훌륭한 변화를 표변이라고 했다. 이는 군자의 모습에도 비유되곤 했다.

군자가 엄격한 수양과 성찰을 통해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고 완전한 인격체로 향해 나아가는 것을 포범의 털갈이와 같다고 본 것이다. <주역>은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니 그 무늬가 촘촘하다’고 말한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다루면서 국가 정보원 입장을 두둔하던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뒤늦게 국정원을 비난하며 책임추궁에 나선 행태도 표변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던 탈북자 출신 유우성씨가 구속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지난해 1월 21일 이후 이들은 ‘탈북자 간첩’ 기획시리즈를 마련하는 등 대대적인 ‘종북 공안몰이’에 나섰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증거조작 의혹이 뚜렷하게 불거졌으나 이들은 애써 외면하면서 국정원·검찰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해왔다. 그러나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자살미수사건이 터지고 갖가지 의혹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자 지금까지의 ‘의리’와 ‘정분’을 하루아침에 내 버린 것이다.

보수언론이 ‘표변’의 원래적 의미처럼 권력 감시와 진실 보도라는 아름다운 털을 가진 표범으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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