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적이고 제한적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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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적이고 제한적인 존재
  • 광주타임즈
  • 승인 2014.04.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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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최수호=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무한히 다채로운 세상의 양상을 모두 다 보고 느껴 볼 수도 없고 변화무쌍한 세태의 조화를 샅샅이 살펴 다 체험해 볼 수도 없다.

그러니 인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는 한정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이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보고 느낀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러내는 인생은 다양한 삶의 양태를 생성하는 악순환의 반복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런 저런 자기식 잣대로 서로 세상을 규정하고 상대를 단죄하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갈등과 분열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분노와 증오가 양산되는 불편한 세상을 꾸준히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념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행한 만행들의 기록들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이런 현상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권력과 부에 힘이 실린 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폭력을 휘두르고도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상대를 폄하하곤 한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미움과 반목은 모두 자기가 믿는 것만이 옳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에게 있어서는 자기의 기준은 절대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한 기준이라는 보장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각각의 주장이 다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각이 자기만의 옳음을 주장한다면 다양한 전체를 모두 아우르지 못하게 되므로 자연히 일정 부분은 부정되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양측 모두 다 틀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다양성은 인간의 삶들을 다양화해버리게 하는 결정적 요인을 늘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두 가지의 잣대로 한 사람을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를테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도 순박한 사람일 수 있고, 종교지도자도 탐욕이 넘쳐나는 범죄자일 수 있고, 비종교인도 종교인 보다 더 선하고 자비로울 수 있고, 이성애자이지만 성추행을 할 수도 있고, 미국의 빌 클린턴처럼 대통령도 추한 행동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겉보기에는 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 한사람 안에는 수많은 그 사람의 모습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 무수히 다른 모습 모두가 다 그 한사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 한사람에게도 나의 이름, 아호, 법명, 누구의 아들, 아버지, 남편, 할아버지, 모임의 회장, 총무, 재무, 간사, 이사, 논설위원, 저자, 교사, 교수, 강사, 지부장, 사장, 주례, 법우, 거사와 같은 다양한 꼬리표가 상황에 따라 붙어 다닌다.

그리고 나는 당면한 정황에 따라 적정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나라고 하는 나’가 다채로운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고, 처신하는 태도는 다를지라도 근원적으로는 한사람이다. 이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마주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나’인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하나의 잣대에 집착함으로써 다양한 모습의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면서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하나의 잣대 즉 자기식 견해로만 상대를 보고 자기식으로 규정하지 말라. 서로 모순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여라. 그리고 실재하는 사실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저항과 수용이 공존하는 모순적 현실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자연히 양극단에 치우치지지 않는 중용의 경지를 이루어내는 내면의 충만감을 만끽하게 될 것이며, 갈등과 반목을 피하게 되는 여유로움을 부리게 될 것이다. 이런 삶에 익숙해지면 매사에 긍정적이고 사랑과 자비가 흐르는 감사한 삶으로 성공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든 잣대는 개념화된 2차원의 세계일뿐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각하고, 자기 화된 2차원의 세계에서 바라본 자기식 관점의 집착에서 벗어나라.

그 결과 모순적 현실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서로 모순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하나로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자비와 사랑의 화신으로의 자기변신은 이루어질 것이며, 갈등과 반목은 사라지고, 증오하고 단죄해야 할 대상을 구제해냄으로써 평화로운 온전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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