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불량·날림 · 부실·소홀’ 엉터리 공정…연쇄 붕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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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불량·날림 · 부실·소홀’ 엉터리 공정…연쇄 붕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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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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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은 빼고 외벽 두껍게?’ 무단 설계 변경 의혹
콘크리트 공급 업체 8곳 ‘부적합’…불량 자재였나
눈보라 속 타설…양생 부족, 동바리 빨리 뺀 정황
감리단 책임론…‘균열 보고’ 받고도 조처 안 했나
광주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13일째인 23일 오전 구조당국 등이 39층에 설치돼 있는 거푸집을 해체해 지상으로 내리고 있다.         /뉴시스
광주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13일째인 23일 오전 구조당국 등이 39층에 설치돼 있는 거푸집을 해체해 지상으로 내리고 있다. /뉴시스

 

[광주타임즈]광주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 현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업계 관계자들은 ‘팬케이크’ 여러 장을 포개놓은 듯 16개 층의 구조물이 연쇄 붕괴한 것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단 설계 변경·불량 자재·날림 시공·부실 감리·허술한 안전 관리 등이 어우러져 전례를 찾기 힘든 대형 붕괴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 ‘기둥 빼고 외벽·바닥 두껍게?’ 무단 설계 변경 의혹

23일 광주 서구청 등에 따르면, 사업 승인 설계 도면상 201·203동 건물의 주거 층별 콘크리트 외벽 두께는 150㎜, 바닥 슬라브 두께는 250㎜다. 실내에는 하중을 버텨내는 구조물로 기둥 6개를 세우기로 했다.

공법은 무량판 구조(건축물의 뼈대를 보 구조물 없이 기둥·슬래브로 구성)를 채택했다. 수직 하중을 수평으로 분산해 버텨내는 보가 없는 구조지만, 203동 상층부 현장 시공 도면에는 기둥이 2개에 불과하다. 반면 외벽 두께는 170~200㎜로 승인 도면보다 더 두껍다.

무너진 201동 건물은 아니지만, 두 건물은 설계상 차이가 거의 없다. 기둥 구조물 개수, 외벽 콘크리트 두께 등에 대한 시공 변경 승인도 없었다.

건축직 공무원들은 “확인한 시공 도면대로라면 구조 심의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거쳤어야 할 큰 변화다”, “무량판 구조에선 기둥이 중요하다. 시공 도면에서 보이는 기둥은 2개다”고 설명했다.

건축·구조 전문가 자문단 소속 송창영 광주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현장에서 봤을 때는 외벽은 힘을 받는 구조물이 아니고 기둥이 모두 떠받치도록 돼 있다. 기둥도 2개였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관련 구조 계산서를 봐야 정확히 의혹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선 PIT층 천장 슬라브 일부를 승인 없이 데크 플레이트(Deck plate· 요철 가공한 철재 바닥 판)를 덧댔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PIT층 슬라브를 승인 내용과 달리 두껍게 타설했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 불량 자재, 콘크리트 강도 문제였을까

국토교통부 ‘2020~2021년 레미콘 업체 품질관리 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붕괴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자갈·모래 등 골재를 잘못 관리했거나 배합 비율을 맞추지 않은 업체가 3곳이다.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기 위해 넣는 혼화제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거나 시멘트 관리가 부실한 업체도 있었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소속 최명기 동신대 교수는 “콘크리트 강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벽체에 들어간 철근은 모든 층에서 생선 가시처럼 드러나 있다. 접착제 역할인 콘크리트가 철근을 잡아주지 못해 흘러내리듯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고 추론했다.

품질 미달 철근, 철근 이음 불량 등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 양생 부족·가설 지지대 조기 철거…날림 시공

콘크리트 부실시공 의혹을 키우는 타설(打設) 작업 일지를 보면 35층은 7일 만에, 36층은 불과 6일 만에 타설 공정을 마쳤다. 일지 내용은 “12~18일가량 충분한 양생을 거쳤다”는 현대산업개발 주장과도 다르다.

콘크리트가 얼 수 있어 겨울철에는 타설된 콘크리트가 잘 굳도록 동바리를 28일 정도 둬야 하고, 콘크리트 굳힘 과정도 14일가량 필요하다.

사고 1년여 전 인근 주민은 ‘쌍둥이’ 격인 1단지 공사 중 눈보라 치는 날씨 속 타설을 강행한 영상을 촬영, 공개했다.

쏟아부은 콘크리트가 충분히 굳지 않았는데도, 가설 지지대(동바리 또는 파이프 서포트)를 미리 철거한 정황도 있다. 사고 당일 오전 201동을 살펴본 작업자는 “지상층 37층까지는 설치된 동바리를 보지 못했다. 이미 철거한 것 같았다”고 했다.

 

■ ‘최후 보루’ 감리단 책임론 불가피

착공 직후 현장을 둘러싼 안전 우려 민원은 빗발쳤지만, 서구청 행정 처분이 ‘솜방망이’에 그치자 감리단은 이렇다 할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께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에는 지하층의 날림 시공(콘크리트 떨어짐, 내벽 구조물 이격 현상 등) 정황이 담겼다. 부실 문제가 심각하자, 감리단 요청으로 보수 업체가 왔지만 이마저도 값싼 땜질만 했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감리단은 2019년 6월부터 지난해까지 3개월에 1번씩 사업 승인 주체인 서구청에 분기별 감리보고서 11권을 제출했지만,  자재·시공 구조 안전 관련 검측치를 모두 ‘적합’으로 보고했다.

또 시공 과정에서의 안전 지지대 조기 철거, 콘크리트 강도 문제 등도 결국엔 안전 시공의 ‘최후 보루’ 감리단의 책임론에 무게가 실린다.

 

■ 붕괴 전 균열 발견 보고에도…안전 관리 소홀?

붕괴 발생 40분에서 1시간 전 무렵, 안전 관리를 맡은 공사 관계자는 메신저로 “외벽 기둥에 균열이 발견됐다”고 시공사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건물 내에는 다수 근로자가 벽돌 쌓기 등 내·외부 공사를 하고 있었다. 39층 콘크리트 타설 현장 촬영 영상에는 작업자들이 붕괴 11분 전에야 심상찮은 낌새를 차린 모습이 있다. 균열 보고 이후 대피령 등 후속 조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정황으로 보여진다.

수사 중인 경찰은 균열 발견 위치 등으로 미뤄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지만, 붕괴 전 위험 징후일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이준상 민주노총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 조직부장은 “무너진 건물과 타워 크레인을 연결한 지지대(브레이싱) 8개 중 상단 2개가 먼저 터졌을 것이다. 그 충격으로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며 “하중을 좀 더 버티는 구조였다면 37~38층에서 붕괴가 멈췄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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