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정쟁'에 빠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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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정쟁'에 빠진 정치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10.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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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고운석 =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고로 이미 정한 약속은 갚지 않은 부채(負債)이다.

한데 이를 증명하듯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내놓았던 기초연금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과 관련해 "기초연금을 모든 어르신께 지급하지 못해 죄송하다.

국민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해 조세와 복지수준의 국민적 합의를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초연금공약 후퇴를 두고 시끄럽다.

대통령은 거듭 사과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장관은 소신을 지키기 위해 퇴진을 강행해 대통령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혔다.

박 대통령은 재정여건을 탓했지만, 기실 예초부터 실천하기 어려운 정책을 제시한 데 따른 잘못을 시인한 것과 다를게 없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2011년 출간한 책에서 '계획오류'란 개념을 제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밝은 미래를 열어갈 것으로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공약을 쏟아내고 각종 규제입법을 양산하는 이유도 정치인들이 자신이 의도했던데로 세상이 움직일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낙관적 성향이야 뭐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복잡한게 세상이다.

복잡한 현실에 발을 딛지 않으면 배는 산으로 가고, 전체 사회가 비생산적인 논란에 휩싸인다.

기초연금 등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논란도 그렇다.

한데 성금을 내줘야 할 부자들까지 복지정책에 기대어 살려고 한다.

복지를 자비 아닌 권리로 선언하는 바로 그때가 노예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공짜 밥을 얻어먹거나 한 달에 20만원씩 용돈을 받는 것을 나의 권리라고 아는 것이야말로 노예들에게 울려퍼진 해방의 찬가다.

20세기 중우(衆愚)정치는 그렇게 국민을 공공연히 노예와 거지로 전락시켰다.

눈물젖은 빵은 자유인의 출발이지만 정치는 이를 교묘하게 뒤섞어 놓는 방법으로 자유를 훼손한다.

기초연금이니 기초노령연금 따위는 이타적 언어로 외양을 꾸미고 있지만 실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악의 속성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구걸을 권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위 70%라는 단어가 갖는 허구성도 그렇다. 70%는 언어 자체로 대다수를 뜻하는 범주어다.

대다수 사람을 '하위'라고 범주화하는 것은 강탈을 자비심으로 바꿔치기하기 위한 언어의 포장술이다.

하위 10%, 하위 20%는 말이 되지만 하위 70%라니! 더구나 그 70%가 세금을 더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4000만원 급여 소득자가 한달에 1만원씩 더 내자는 세법 개정안은 지난 8월 깨끗이 거부되고 말았다.

지금 새삼 증세를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로부터 얼마를 더 받아내자는 것인지.

복지가 시혜 아닌 권리로 선언된 것은 2차대전 직후다.

종종 시민적 권리라는 말을 쓰는 것은 받는자의 자존심을 위한 허망한 노력이다.

만일 기초연금과 부자증세의 결합을 나의 권리라고 선언한다면 이는 타인을 강탈하는 것을 나의 권리로 선언하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이 지지한다고 선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 도시에 의인 10명이 없을 수도 있다.

이타심과 권리를 혼동한다면 이는 도덕의 무정부 상태를 말할 뿐이다.

말도 많은 국민연금 연계는 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국민연금의 원리는 기초연금과 다를 것이 없다.

시민들이 국민연금을 개인저축이나 퇴직연금처럼 생각하는 것은 정부가 고의적으로 만들어낸 혼동이요 오해다.

연금 가입자들은 연금공단에 있는 '내 돈'과 정부가 주는 '공짜'를 구분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연금이 저축 아닌 사회적 부조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이 어떨는지.

우리는 각자의 양심이 인도하는 바에 따라 가난한 이웃에 연민의 정을 느끼고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그러나 복지를 시민적 권리로 규정하는 순간 도덕은 국가의 전유물이요 독점 공급품이 되고 만다.

국민 대다수로 하여금 공짜 돈을 놓고 투쟁하도록 만드는 것은 거부돼야 한다. 아찔하게도 정치가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훗날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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