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생각난 세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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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생각난 세제 개편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10.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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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논설위원 고운석 = “세금요? 나만 빼고 더 거둬야죠.”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국세청이 박수 받는 방법이 있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자를 집중 세무조사 해 거액을 추징했다”는 보도자료를 자주 내보내면 된다.

중산층 이하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민들은 세금에 민감하다.

조선시대도 그랬던 것 같다.

무명옷을 입은 조선 21대 군주 영조는 백성들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국역(國役)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다.

영조가 파견한 암행어사들은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피폐한 삶을 보고했다.

그중에서도 군대 의무를 대신하기 위한 군포(軍布) 납부에 대한 폐단이 가장 컸다.

마침내 영조는 1750년(즉위 26년) 5월 19일 창경궁 홍화문 앞에서 백성들 이야기를 직접 듣기로 했다.

그러나 조선 군주를 맞은 백성들은 생각보다 목소리가 높지 않았다.

왜냐하면,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미리 국왕에게 이야기할 내용의 수준을 정리해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영조는 백성의 진실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완벽한 개혁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당시 영조는 1년에 백성들이 부담하는 군포 2필을 1필로 줄인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일종의 반값 군포법이었다. 이 반값 군포법을 ‘균역법(均役法)’이라 칭했다.

말 그대로 전체가 균등하게 국역을 책임지자는 것이다.

그래서 반만 내는 부족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자면 양반들도 같이 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영조의 생각과 달리 양반 사대부들은 군포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다.

부족한 세금을 채우기 위해 관리들은 다시 백성들에게 추가 세금을 요구했고 백성들 고통은 가중되었다.

균역법이 무력해지면서 조정 관리들은 균역법 제정이전, 백성들이 군포 2필을 내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진언했다.

하지만 영조는 균역법 취지를 지키면서 백성을 위한 법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조는 “옛날로 돌아가면 나라가 따라서 망할 것이다”라며 개혁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균역법은 유지되었지만 양반 사대부들 기득권 유지로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백성들에게 부담만 주는 법안이 되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세제개혁안을 마련했다.

중산층이 세금을 더 내야 하고, 그동안 세금을 내지 않던 종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세금을 거두는 내용이다.

그러자 부유층 세금 확대는 거의 없고 애꿎은 직장인들만 더 세금을 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이 이 법안을 없던 것으로 하고 새롭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바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 협의를 거쳐 ‘중산층 세금폭탄’으로 비판받은 세제개편안을 대폭 수정했다.

수정안은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증세 기준점을 연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높였다.

연봉 5500만원까지는 수정 세법개정안으로 소득세 부담이 전혀 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연소득 5500만~6000만원 근로자는 소득세가 2만원 늘어나며, 6000만~7000만원 근로자는 3만원 증가하는 방향으로 수정안을 냈다.

7000만원 이상인 근로소득자 110만 명은 1인당 세 부담이 33만~865만원 느는 것으로 추산됐다.

원안대로라면 연소득 3450만~7000만원 사이에 있는 직장인은 소득세가 평균 16만원 늘어난다.

그러나 수정안에 따르면, 근로소득자 한 명 당 연간 세금 부담이 16만원에서 아예 0원(3450만~550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번 수정안에 따라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전체 근로자는 434만 명(연소득 3450만원 이상)에서 229만 명 줄어든 205만 명(연소득 5500만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세제팀은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국가를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 더 깊게 고민해서 수정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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