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욕망 바로 읽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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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욕망 바로 읽어내기
  • 광주타임즈
  • 승인 2013.08.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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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 최수호 논설위원 = 우리는 살다보면 마음에 거슬리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닥치는 대로 날카롭게 증오심을 드러내는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두려움에 주눅 든 서글픈 자신을 숨기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잘 살펴보면 인간은 모두 문제성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확고한 부정적 믿음이 강하면 거칠게 공격하고 조롱하는 무례함을 저지르고,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심이 깊으면 자존심은 상하지만 겁에 질린 좀스러운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처럼 부정의식에 매몰되어 버리면 사랑, 자비, 선, 덕과 같은 건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절대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설령 누군가가 사랑의 손길을 내민다 해도 그런 배려 따위는 용기 있게 버리라는 내면의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는 그건 위장된 가짜로서 진실일리가 없으므로 관심을 보이면 곧바로 자신을 비웃고 조롱할거라며 그런 호의를 딱 잡아 때는 호기를 부린다.

그런데 겉으로는 당당한척 하지만 내심으로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미련은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의를 베푸는 손을 잡아볼까 하는 유혹에 갈등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렇게도 줏대가 없느냐며 스스로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멍청한 자신을 질책하면서 기세등등하게 거절하고 만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선의의 손을 내민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자존감을 똑똑히 봐두라면서 상대의 성의를 거부해 버리면서도 내심으로는 후의를 보내는 사람이 자신의 허풍을 이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허울뿐인 자신을 번복해주리라는 기대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실망스러운 마음의 상처만 감수해내야 할 뿐이다.

그리고는 역시 세상은 다 그런 거라는 자위성 믿음만 키워간다. 이렇게 우리는 ‘겁에 질린 소심한 나’로서의 연약한 모습은 마음속 깊이 숨겨둔 채 ‘날카롭고 무례한 나’로서의 사나운 겉모양새로 거칠고 강인한 허상의 나로 살아가는 모순성을 드러내는 삶에 익숙해 있다.

다시 말하면 순수하고 변함이 없는 사랑, 자비, 배려, 선, 덕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고, 아무도 그런 걸 나에게 베풀어줄 리도 없다고 여겨버리기 때문에 그런 걸 바라거나 표현했다간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확신의 갈등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신념에 따라 누군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배려한다 해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이용하려는 적인지 아닌지를 의심만 한다.

따라서 자기만을 위한 완전한 사랑과 배려를 갈구하기위해 “이렇게도 할 수 있어!” “저렇게도 해봐!”라고 은연중에 요구하면서 내심으로는 진정으로 날 사랑하고 배려하는가를 시험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곧바로 “그러면 그렇지! 그러면서 날 사랑한다고?” “그렇게 못한 넌 가짜 사랑과 배려로 날 갖고 놀리는 거야!” 라고 단정하곤 한다.

그러니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인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흑백의 세상에서는 완벽한 전부가 아니면 모두 가짜가 되고 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완벽한 전부가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건지를 스스로도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 전부를, 그 완벽을 증명해보이라고 막무가내로 남에게 떼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 가짜였고 나도 진짜가 아니었으며 너도 나도 모두 쓸모없어 버려져야 할 가짜라고 항상 투덜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그 사람의 전부가 되어야 만족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진짜는 없고 가짜뿐이며, 소중한 사람 같은 건 무의미한 환상이므로 결국에는 타인을 질식시켜서 떠나게 하고 만다.

이처럼 우리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늘 못 바랄 건 바라고, 바랄 건 못 바라는 어리석음에 파묻혀 왜곡된 삶을 살고 있음을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에게 완벽한 전부이기를 바라고, 자신도 남에게 완벽한 전부가 되려고 하지 말라. 이런 세상은 없다.

생활의 틈새를 즐기고 마음의 여유로움을 수용하는 삶을 엮어가는 지혜를 발휘하여 서로가 질식하는 세상살이가 되지 않도록 하라.

성공한 행복은 타협과 양보로 조화를 이루어내는 융통성 있는 삶속에서 성취된다. 욕망의 포로가 되어 눈먼 짝사랑에 휘둘리는 인생에서 벗어나 보라.

그러면 바랄 수 있는 것과 바랄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슬기로운 삶의 지혜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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