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발행인 칼럼]백형모 광주타임즈 대표·발행인=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제국들이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것도 적의 침략이 아니라 황제나 왕의 측근 간신들에 의해서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뤘던 진(秦)나라가 통일 이후 15년 만에 멸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221년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은 재임기간에 3번의 암살 미수를 당해 목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죽는 날까지도 불사약을 찾아 동부로 순행하던 중 병이 나서 사망한다.
황제가 갑자기 객지에서 사망하자 측근으로 총애받던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의 죽음을 숨기고 자신의 부귀권세를 위해 음모를 시도한다. 두 아들 중 올곧은 성격의 태자 부소(扶蘇)를 배제하고 그가 조종하기 쉬운 둘째 아들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기 위해서다.
조고는 먼저 호해를 찾아가 설득한다. 호해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길 수 없다며 반대했으나 조고는 갖은 방법으로 부추기며 권좌를 유혹한다. “큰 일을 할 때는 작은 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 법입니다. 작은 것에 매여 큰 일을 잊는다면 반드시 훗날 해가 찾아옵니다. 과감하게 결행하면 성공할 것입니다. 어서 결단을 내리십시오”
조고는 위협에 가까운 설득을 거듭한다. 그러면서 ‘중대한 일이니 극비리에 승상 이사(李斯)를 찾아가 상의해 보라’며 틈을 내준다. 조고는 동시에 이사를 먼저 찾아가 그의 라이벌인 몽염(蒙恬) 장군을 들먹인다. 몽염과 친분이 두터운 부소가 되면 이사는 궁지에 몰릴 것이 뻔하니 차라리 함께 호해를 옹립해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속삭인다. 출세 지상주의자였던 이사는 한숨을 쉬면서도 조고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조고와 이사의 치밀한 계략에 따라 호해를 옹립하기로 한 뒤, 세 사람은 황제 유언을 조작해 만천하에 발표한다. 유서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태자 부소를 불효자로 몰고, 몽염 장군은 불충으로 몰아 자결을 명했다. 유서를 받든 부소는 그 진위 여부도 가리지 않고 바로 자살했으며 몽염은 자결을 거부하다 감옥에 갇혔고 끝내 핍밥을 이기지 못해 독약을 먹고 자결했다.
이렇게 호해는 19세의 나이에 2세 황제에 올랐다. 그러나 권력은 꿀맛 같아서 둘이 같이 나눠 먹을 수 없는 법이다.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는 최고 권력자 자리를 두고 싸우기 시작한다.
조고는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죄목을 날조하며 이사를 찍어낸다. 황제를 핍박하고 적과 내통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음모였다. 이렇게 2세 황제와 승상 이사를 이간질해 이사를 살해했다.
이사가 죽자 조고는 마침내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최고 권력자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나아가 황제를 확실히 통제하기 위해 “폐하는 아직 어리고 이제 막 즉위해 제대로 알지 못하니 조정 대사를 논하는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라고 건의하며 궁중 깊숙이 들어앉혔다. 황제는 구중궁궐에서 여색을 탐하고 온갖 사치를 부리며 폭정을 일삼았다.
조고는 황제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이것이 말이옵니다’라고 우긴 뒤 자신의 말에 반기를 든 신하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황제를 바보로 만든다. 이것이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유래다. 황제가 곧 조고의 악랄하고 간사한 음모를 알게 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끝없는 욕심에도 만족할 줄 모르던 조고는 무능함을 이유로 2세 황제마저 죽이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황족이었던 자영을 3세 황제로 세운다. 그러나 자영은 황제가 된 직후 조고를 암살, 조고의 부귀영화의 꿈은 허망하게 끝난다.
자영은 무너진 진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나 세상 민심은 이미 진나라를 떠난 뒤였다. 진나라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 서로 왕을 참칭하자 자영은 왕좌를 보전하기 위해 황제에서 격을 낮춰 왕으로 부르며 훗날을 도모했으나 기울어진 국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기원전 206년, 초한 쟁패의 시기에 수도 함양에 먼저 입성한 유방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보전했으나 뒤이어 입성한 항우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통일제국 진나라는 1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저 위대한 진제국이 이렇게 쉽고 허무하게 무너진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 주변에 기웃거리며 그것을 탐하고, 그것을 위해 인의와 덕망의 가면을 쓰고 설쳐대는 간신들 때문 아니던가?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궁 주변, 국회의사당 주변에 붉은 완장을 차고 드나드는 비겁한 간신배들과 2200년 전 진나라와 무엇이 다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