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타임즈=발행인 칼럼]백형모 광주타임즈 대표·발행인=한자로 어렵지만 우리말로 하면 아주 쉬운 사자성어가 있다. 석린성시(惜吝成屎)란 말이다. 석(惜)은 아깝다, 린(吝)은 아끼다 인색하다, 성(成)은 이루다 되다, 시(屎)는 똥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아끼다 똥 된다’는 뜻이다.
12월이다. 한 장 남은 달력, 한해의 끝자락에서 되새기는 이 말이 의미는 무엇인가.
수많은 먹을 것, 입을 것, 만날 일, 놀러 갈 일을 아끼고 아껴 어느 좋은 날 결행하기 위해 미루다 허망하게 날아가는 것들이 많이 본다.
이사할 때 비워야 할 장롱을 보면 그 말이 간절하다. 하도 고와서 미처 입지 못하고 다음 주에, 혹은 내년에 다시 입기 위해 고이 간직했던 것이지만 결국은 먼지만 쌓이는 천덕꾸러기로 변한다. 아까워서 자주 차지 못하고 아꼈건만 구시대 유물로 ‘열중 쉬어’하고 있는 겹겹이 매어있는 넥타이도 마찬가지다. 말할 필요 없는 ‘아끼다 똥’ 된 것들이다. 지나치게 아끼고 인색하다가 결국 쓸모없게 되어버린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훗날을 위해 아껴두는 바보가 되지 말라는 충고 아닐까?
좋은 날에 대한 미련도 마찬가지다. ‘다음 주에, 다음 달에 가지 뭐’ 하다가 단풍철이 다 끝난 경우도 허다하다. 반대로 오지도 않는 미래를 염려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예기치 못한 불안은 그대로 견디며 부딪히면 된다. 인생은 한번 뿐이며 삶의 의미는 지금에 있다. 저 먼 미래에 있는 행복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허상일 뿐이다.
미국과 대만, 중국에서 유학하다 나이 40이 다 되어 대학교수가 됐으나 벌써 정년 문턱에 와 있는 친구가 있다.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칠판에 “말기암으로 5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생각을 적도록 했다.
“못갔던 여행을 혼자 가보겠다”
“소문난 맛집에서 와인을 즐기겠다”
“등 돌렸던 친구와 화해를 하겠다”
“신세졌던 사람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겠다”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보고 싶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라는 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답을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마다 그려온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만이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교수가 학생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었다.
“무엇이라도 쓰게나. 아무것도 안 쓰면 영점 처리 될 수 있네”
학생은 그 후에도 골똘히 생각하다 제출 5분 전이란 소리를 듣고서야 무언가를 단숨에 적었다.
“나는 내일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일만으로도 나는 벅차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며 사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것, 그것이 남은 삶을 향한 보답이며 내 사명이다.”
답지는 본 교수는 그 학생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던졌다. 바라던 답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교수는 나머지 학생들에게 되 물었다.
“그렇게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왜 그대들은 못하고 미뤄왔나?”
교수가 추구하고 싶은 삶의 자세는 바로 그것이었다. 소중한 것일수록 더 아끼고, 좋은 일일수록 더 미루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 저 멀리있는 미래 행복보다 현재의 삶이 훨씬 소중하고 절실하다.
짧지만 가장 멋진 단어가 ‘Do It Now’라는 말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자. 오늘은 남은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래는 내 것이 아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생명의 종착역으로 쉼 없이 달려가고 있는 하루살이다.
곤충인 하루살이는 1년 정도 유충으로 살다 성충이 되어 물 밖으로 나오는데 그날 아침해를 바라보며 하늘을 날고 사랑을 찾아 짝짓기를 한 뒤 하루 안에 죽는다. 인고의 나날에 비해 하루는 너무나 짧고 허망하다. 하루살이는 하루, 인간은 고작 100년,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일 뿐 하루살이와 인간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 인생에 최고의 선물은 현재다. 못한 것, 미뤘던 것, 아껴뒀던 것들로 내 인생에게 미안해 하지 말자. 바로 지금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