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청첩(請牒)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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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청첩(請牒) 문화
  • 광주타임즈
  • 승인 2023.05.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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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광타춘추]박상주 주필=계절의 여왕 5월!

5월은 신록의 계절이자 결혼 성수기이다.

최근엔 스몰웨딩, 컨셉웨딩을 원하는 신랑, 신부가 많아지면서 결혼식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봄과 가을에 예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올봄은 특히 코로나 제한이 본격적으로 풀리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결혼식을 치르는 신혼부부들이 늘며 하루가 멀게 청첩장들이 날아들고 있다. 

필자 또한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한참 자녀 혼사 시기이다 보니 청첩장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혼인 절벽’이 ‘인구 절벽’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반갑고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보낸 이가 도무지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온 청첩장이나 평상시 왕래가 뜸했던 분의 청첩장을 받을 때는 고민스럽기도 하다. ‘나를 언제 봤다고….’ 혹은 ‘이럴 때만 소식을 전하나?’ 하며 참석을 망설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청첩 문화는 우리의 십시일반 상부상조의 정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축의금은 가정경제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부조금은 혼사를 치르는 가정에는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서로 주고받는 품앗이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주고받는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화폐가치가 변함에 따라 부조금 액수도 상향되고 있다. 결혼식 장소가 호텔 등 음식값이 비싼 장소이면 부조금을 넣을 때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하루 품을 팔아서 서너 시간 차를 타고 갔다가 봉투를 건네고 돌아서는 비생산적인 일이 있어 왔다.

청첩장으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청첩장을 보냈을 때 봉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어색함, 청첩장을 받고 예식장에 참석해서 축하했으나 내가 청첩을 했을 때 아무 연락이 없는 사례, 청첩을 하지 않아서 질타를 받는 사례, 등등 많은 부작용이 있다. 공직사회에서는 직위를 이용해 산하기관 기관장에게 청첩을 해 챙기고 상대편이 청첩을 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왜 청첩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넘기는 경우를 왕왕 보았다. 자기네 행사에는 서너 번씩 참석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혼사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혼사를 치르고 나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 섭섭하고 찜찜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청첩장이 손해보험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손해보험이란, 계약한 바에 따라 손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되는 것이 아니라 낸 금액이 깡그리 사라지거나 보상된다고 하더라도 납부금에 미달한 경우를 뜻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낸 축의금을 돌려받을 목적으로 하는 비혼 선언식이 유행이라고 한다. 보통 결혼은 조용히, 혼자 그냥 안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비혼 선언식을 통해 자신이 낸 ‘축의금’을 돌려받는 것이다. 

자기 집의 경사에 남을 초대한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풍속이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애경사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었다. 간장이나 된장, 달걀 또는 곡식 등을 싸가지고 가서 마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는 안팎으로 해야 할 일들을 거들어 주는 사람 등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일들에 함께했었다. 그런 아름답던 조상님들의 숨결이 지금엔 급기야 스스럼없이 세금 고지서라고 할 만큼 무거운 이름으로 전락될 정도의 초대장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받는 이도 보내는 이도 본래의 마음을 찾기 힘들게 됐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지만 진심이 없는 축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부부 됨을 선언하고 한 가정을 이루는 혼인예식은 일생 최고의 축복이요, 축제의 장이다. 신랑과 신부는 온 가족 친지뿐 아니라 참석한 내빈,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왜곡된 축의금 문화로 인해 하객들은 결혼식을 의무감으로 참석할 뿐 기쁨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면, 모두에게 결혼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갈수록 이웃과 멀어지고 친척과 왕래가 없어지는 현실 속에서 교통 혼잡과 바쁜 일상을 밀치고 행사장에 찾아가 오랜만에 잊었던 얼굴도 만나고 그래서 잠깐이나마 서로의 지친 삶도 위로하는 청첩의 새로운 의미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로 바꿔 나가면 어떨까 싶다.

청첩은 과하지 아니하되 우리 전통문화에서 어려운 일에 십시일반으로 도와주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본래의 정신은 살아 있어야 한다.

대사(大事)로 인해 가까웠던 사이가 소원해지고 서먹해진다면 청첩을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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