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 3년 만에 국화꽃 피었네, 화순군에도, 마음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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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3년 만에 국화꽃 피었네, 화순군에도, 마음속에도…
  • 유우현 기자
  • 승인 2022.11.08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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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우현 기자의 ‘타임 라인’ ① 화순군 국화향연
홀연히 사라진 오랜 친구 B와 국화꽃에 얽힌 사연
국화동산에 흐드러지게 핀 것은 국화꽃일까 추억일까
2022 국화향연 개막 당일인 지난달 28일 축제 현장 모습 /사진=유우현 기자
2022 국화향연 개막 당일인 지난달 28일 축제 현장 모습 /사진=유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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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는 국화향이다. 그 향기가 듬뿍하다. 발원지는 화순군 남산공원. 1억 송이 국화꽃이 파스텔톤으로 피었다. 가을이 온 것이다. 

화순군에서 ‘2022 국화향연’을 개최했다. 코로나19 탓에 3년 만에 재개한 행사다. 기간은 10월 28일부터 11월 13일까지. ‘탄광촌’ 대신 ‘백신’을 내세운 딱딱한 동네에, 말랑한 이미지를 주는 고마운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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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에게서 전화가 왔다. 3년 만이다. ‘살아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떠난 그는 연락 한 번 없었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것이 개인적 성향이지만, 모르는 번호도 받는 것이 직업적 소양인지라, 새벽 2시에 애먼 잠을 깨운 그 전화를 나는 홀린 듯이 받았다. “화순에 국화꽃이 피었대.” 대뜸 들려온 첫마디에도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이런 시간에 이런 목소리로 국화 얘기를 할 사람은 녀석 밖에 없다. 그래, 그럴 때가 됐다. 어느덧 10월이니 화순에 국화꽃이 피었을 테지. 화순에 가을이 온 게다. 

20대의 B와 나는 평범했다. 그냥 살면 뭐든 될 줄 알았다. 낮에는 화순군문화센터에서 공부를 하고, 밤에는 152번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갔다. 양동시장에서 치킨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고, 구시청에선 먹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값싸고 빠르게 취하는 길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삶을 탓하면서도 구태여 다른 삶은 원치 않았다. 나는 소주 한 잔, B는 국화 한 송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022 국화향연 개막 당일인 지난달 28일 축제 현장 모습 /사진=유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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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첫날 오후 3시. 교통정체가 화순읍 초입부터 심하다. 행사장이 ‘화순고인돌전통시장’ 인근인데다, 하필 장날까지 겹쳐 북새통을 이룬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국화가 핀 화순읍 남산공원은 고지대다. 느린 걸음으로 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가을이어도, 볕이 쎈 정오에는 가볍게 땀이 난다. ‘괜히 왔나’라는 짜증이 들 때쯤, 둘레 길의 국화 1억 2000만 송이가 방문객을 반긴다. 터져나오는 것은 짜증 아닌 탄성이다. 고지대의 장·단점이 어우러져 독특한 질감의 풍경을 만든다. 평지대의 꽃밭이 나열됐다면 이곳의 꽃밭은 넘나든다. 꽃에서 발원하는 색채뿐 아니라, 고저를 넘나드는 입체적 아름다움이다. 

행사장 곳곳에선 젊은 연인들이 분주히 사진을 찍는다. 한 노부부는 축제 명물 ‘들순이국화빵’을 집어들어 손주 입에 넣어준다. 동그란 얼굴에 노란색 미소가 번진다. 흐드러지게 핀 것은 국화 아닌 추억이다. 이것이 ‘한자수홍(恨紫愁紅)’일까. 울긋불긋하여 여러 느낌ㆍ감정ㆍ생각 따위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B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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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내가 아는 이 중 가장 성실한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몰래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녀석은 늘 혼자 뒤처리를 맡았다. 졸업 후엔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하루에 10시간을 공부했으니 게으른 편은 아니었지만, 3~4년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자 B는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B의 누이가 직장에서 사고를 당한 것은 그 즈음이다. ‘지붕 높은 집에서 사는 꿈’을 꾸던 누이는, 지붕 높은 공사장에서 발을 헛디뎠다. 남편을 용광로에, 딸은 가슴에 묻어야 했던 B의 어머니는 멀리 떠났다. B가 복무하던 부대로 걸려온 통화가 그와 마지막 대화다. ‘엄마 너무 외로워’라는 말에 B는 짜증을 냈다고 한다. 전역 후, 텅 빈 집에 B는 화분 하나만 덩그러니 놓았다. 거기에 국화꽃 한 송이를 심었다. 

2019 국화향연이 열렸을 당시, B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나돌 때 쯤, “오늘 밤 12시에 국화향연에서 만나자”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걱정도 되고 호기심도 일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자정의 남산공원은 텅 비었다. 낮의 인파와 대비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리고, 밤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고 국화 옆에는 B가 서 있었다. B와 나 사이엔 꽃밭이 가로질러 있어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너 거기서 뭐-” 그 찰나에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소쩍새 울음소리였다. 가냘프고 구슬프던 그 소리가 절규로 번졌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B는 짐승처럼 울었다. 

다음 기억은 뚜렷치 않다. 그것이 오랜 친구의 낯선 모습 때문이었는지, 오랜 친구의 낯선 고통을 함께하기 두려워서였는지, 나는 모른다. 날이 추워 벗고 있던 재킷을 B에게 건넨 후, 아무 말 않고 함께 내려온 기억만 어렴풋하다. B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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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연락한 B는 “개막일, 남산공원의 군민회관에서 6시에 만나자”라고 했다. 붐비던 바깥에 비해 군민회관 안쪽은 비교적 한산했다. 어째서 B는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것일까. 게다가 B는 늘 밤에만 남산공원을 찾았다. ‘국화향연은 밤에 오는 것의 예의’라며 날 밝을 때는 절대로 오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B가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결국 B는 나타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사무실 직원이 자켓 하나를 건네줬을 뿐이다. ‘재수없게 생긴 녀석이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면’ 전해달라고 했단다. 3년 전, 내가 B의 어깨에 걸쳐준 것과 꼭 닮은 옷이었다. 

군민회관을 나와 다시 국화동산을 걸었다. 국화꽃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다. 북적이던 인파도 줄었다. ‘6시에 보자’던 B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낮도 밤도 아니다. 흡사 B처럼. 어떤 두 시기에 걸쳐 있다. 가을 미풍이 국화향을 싣고 얼굴을 스친다. 참, 흐드러지게도 피었다. 

B는 그렇게 떠났다. 한동안 또 그를 볼 수 없으리라. 전화가 걸려 온 번호로 연락을 해볼까도 했지만, 관뒀다. 그것이 그에 대한 예의다. 녀석은 아마, 옛 친구가 자신을 주제로 요상한 글이나 끄적거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게다. 뭐 어쩔 테냐. 30분이나 기다리게 했으니,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가야지. 

집으로 돌아와 B가 준 재킷을 살펴봤다. 내가 그에게 준 것보다 예쁘고 새것이다. 심지어, B를 닮은 향기도 나는 듯했다. 기분 탓일까. 고개를 숙여 재킷의 향을 맡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틀림없는 국화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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