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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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봄
  • 광주타임즈
  • 승인 2021.03.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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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타임즈]트럼프를 그리며…2018년 9월 19일 밤 평양능라도 5·1경기장, 15만 군중의 함성, “문재인”을 연호하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만주벌판을 피 흘리며 달리던 독립선열들이 일어나 눈물 훔칠 장면이었다. 8000만 한민족 응어리가 풀어 헤쳐져 날아가는 듯 펄럭였다. 한편 글쓴이의 눈에 비치는 그날 그 군중의 손짓은 대한민국을 향하는 구원의 간절한 호소로도 다가왔다. 문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졌을 뿐”이라며 “다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자고로 국가지도자는 눈앞의 잘잘한 이익이 아닌 거대한 역사의 조류를 가늠할 수 있는 인물, 공공의식이 체질화된 인물, 100년을 내다보는 정치신념과 그 열정으로 뜨겁게 심장이 박동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정녕 한반도의 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동시 재임 기간은 만물이 소생하는 듯 한반도를 설레게 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018년 9월 18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희망이 우리를 감싸는 시기였다. 또한 살림살이는 먹고 살만한, 그러면서도 조상들의 업 때문에 이리 걸리고 저리 걸려서, 경제 덩치에 맞지 않게 미국의 눈치를 봐야 되는 불완전국가의 비애가 뼈에 사무치는 시기이기도 했다. 보통 국민이라면 이 불완전국가의 꼴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 이의가 없어야 당연하다. 그러나 이 불완전국가의 틀을 유지해 주면서 미일의 정치적 지원을 받는 세력이 더 박수 받는 대한민국이라면, 배부른 돼지라고 손가락 질 해도 누가 대들 수 있단 말인가.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2000년 6월15일 김대중대통령과 2007년 10월 4일 노무현대통령 통한의 한반도 아리랑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시 2018년 한반도의 봄은 왜 우리가 불완전국가 인가를 보여준 쓰라린 현실이었다. 미국의 전략에 꼼짝할 수 없는 대한민국, 그런 판국에 온갖 수단으로 문재인정부의 남북평화공존 전략을 방해하는 정당과 친일반공 일변도의 언론들, 또 그 정당과 언론을 따르는 다수의 국민. 그들에게 100년 후의 대한민국은 없다. 오로지 지금 당장 그들 개인과 진영의 이해득실만 존재할 뿐이다. 한반도가 섬나라 일본의 압제에서 배고픈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근본의 이유가 당시 주류계층의 ‘배부른 돼지정치의식’ 맥락에서 발생됐다는 사실이다. 진보적인 유전자의 백성들이 흘린 피눈물로 되찾은 역사의 제단에서 지금 불완전국가 유지 세력들이 그 숭고한 피를 조롱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였으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은혜였다는 극우친일 지식인들의 망언에 동조하며 박수칠 수 있느냐 그 말이다. 자연의 봄은 왔다. 그러나 저들이 저렇게 기고만장 펄펄하니 한반도의 봄은 오리무중 춘래불사춘이다.

바이든을 바라보며…바이든 대통령의 입만 쳐다봐야 되는 한반도의 현실이 불쌍하다. 북한 핵 제거가 목표일뿐 한반도의 평화는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이익이 되지 않는 일본과 미국의 외교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정당이 있다. 일본과 미국이 여차하면 한반도의 정치에 자기들이 주인인양 개입할 수 있는 토양은 언제나 갖춰져 있다. 이렇듯 미일은 그들을 무조건 따르는 이른바 한국의 보수세력, 그러니까 친일반공 수구정당과 언론을 선호하며 아군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요즘 방송뉴스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 핵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마치 남 일처럼 중계하고 있다. 친일반공 성격의 언론이 더욱 그러하다. 백악관의 동정을 중계하는 뉘앙스가 “바이든 대통령님, 북한 김정은을 가만두지 마시오, 대한민국의 문재인정부를 가만두지 마시오” 그렇게 들려왔다. 그들이 진정 대한민국의 정당이고 언론이라면 “바이든 대통령이시여!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원합니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이라면 북한 핵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그 정도는 강력하게 말 할 줄 알아야 된다.

이완용의 법치…자연의 조화인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우리에게 그냥 온다. 휴전선의 봄인 한반도의 봄은 우리가 노력해 기다리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그냥 겨울만 붙잡는 수구의식으로는 일용할 양식을 수확할 수 없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봄을 일구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가을엔 수확을 하게 된다. 그것이 평화이다. 평화가 가져다준 곡식을 입에 넣으면서 그 입으로는 전쟁분위기 냉전의 한반도를 주장하는 정당과 그 지지 국민이 찔리는 양심은 있는지 구태여 자유민주주의 헌법과 법치를 외치고 있다. 찔리지 않다면 왜 40년전 군부독재 시대의 구호를 짜깁기 하는가. 그 법치는 1910년 이완용일파의 찔리는 양심, 나라팔기 법치와 통한다는 사실이다.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든다. 현재 미얀마의 군부가 그 국민을 향해서 외칠 민주주의와 법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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