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하나 되어 ‘번영·평화오기를… ’

2018-05-01     광주타임즈
[기고=광주타임즈]민족 화해 협력 범국민 협의회 집행위원장. 시인 나 일 환=남과 북의 정상이 만났다. 그리고 남북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위한 성명이 나오고 남북 평화가 세계의 평화로 이어지기를 갈망했다. 온 국민의 환호와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세계가 바라보는 가운데 남 과 북의 만남은 진정성이 있었고 하나의 겨레임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세계는 남과 북의 만남을 축복했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데 많은 시간을 활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 라는 슬로건아래 감동과 축복 그리고 설레임과 기대감속의 만남이 또 다른 생각과 말들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려’라는 두 단어의 이야기들이다.

남과 북의 만남이 진정성이 없는 시간 끌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피를 나눈 한민족이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서 이제는 헤어지지말자는 굳은 약속이 어쩌면 그동안 몸에 베인 체제속의 갈등과 변모된 의식구조와 생활문화의 변형으로행여 지켜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북한은 핵 포기를 해야 하고 남한은 핵 포기를 위해 경제적인 도움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 남과 북의 만남을 통해 하나된 마음을 다듬어서 새로운 도약의 꿈을 펼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뇌리에 ‘여지하(如之何) 여지하(如之何) ’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로 ‘이 일을 어찌할꼬? 어찌할꼬? 라는 뜻이다. 남과 북의 아름답고 정겨운 만남을 가슴에 묻고 어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만남 뒤의 뒷이야기들이 우리를 많은 생각과 상념으로 몰입시켜 또 다른 현상을 만들어 고독의 깊은 수렁에 함몰 시킨다.

그러나 너무나 기다려왔던 남과 북의 만남이기에 많은 생각들이 오가면서 두뇌의 회전이 멈추지 않고 빨라진다. 두뇌의 회전은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어떠한지 모른다. 그러나 글을 쓰는 문인들의 생각은 밤하늘 수많은 별들처럼 반짝거림을 쉬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 나라는 존재로부터 시작하여 너라는 사람,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 행동들을 끄집어내어 접목을 시도하고 밤 하늘 별을 따서 그리운 임께 바치기도 한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바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사색을 통해 소설도 쓰고 울기도하고 웃기도 한다. 어쩔 땐 본인 스스로 내가 아직 미치지는 않았겠지 하고 손으로 다리를 꼬집어보기도 한다. 문인들은 아집 또한 대단하다. 글 몇자 쓰면서 자기 글에 도취되어 주위를 망각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이상한 부류의 문인들도 있다. 글을 쓴다는 미명아래 우쭐거리는 바보 같은 스스로 멍청하게 만드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부류가 있다. 진정한 문인은 겸손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나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대단하다. 나를 버리고 세상을 구하려는 의협심 또한 강하다. 그리고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문인의 길이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문인들의 선비정신을 말함이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몇 몇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고 문인들의 전체를 흐려놓는 일이 많다. 그것은 글쓰는 자의 기본인 인성이 바로서지 않아서이다. 아무리 훌륭한 글을 쓰면 무엇 하겠는가? 그글은 잡글에 불과함이다.

남과 북의 만남 뒤에 나오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문득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사고(集團思考)’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당황을 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만들어낸 개념으로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의견 일치를 위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다음 백과에서 집단사고는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오직 집단의 목표와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윤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결정까지도 정당화하게 된다. ‘집단사고’는 개개인의 다양한 사고가 토론 과정에서 노출되지 않고, 집단의 대표적 생각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현상이다.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강할수록, 조직의 응집력이 높을수록 집단사고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그 예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이 대표적인 집단사고의 사례일 것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내말이 정답이라는 생각의 발상 자체가 오직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친분을 이용해서 한 집단을 음해하려해서 경고를 하려함인데 현 직분을 활용하는 파렴치한 생각과 행동들을 자행한다.

공자는 모든 일에 두 번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노나라의 대부(大夫)였던 ‘계문자’는 생각이 많아 세 번은 곱씹은 뒤 실천에 옮긴 사람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두 번이면 좋지”라고 말했다. 여기서의 두 번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한 번 그리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한 번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이로움과 불리함을 생각 한 뒤에 말하라는 것이다.

손자병법 구변편九(變編)에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반드시 이로운 쪽과 해로운 쪽을 한데 놓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 번 생각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악마의 대변자’ 제도를 운영하는 조직도 있다.

악마의 대변자는 조직 구성원 중 한 명을 ‘악마의 대변자’로 지명해 무조건 반대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결정적 결함을 토론하면서 찾아내고, 의견 내지 정책의 부정적 측면을 보완해서 완성도를 높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자께서는 “어찌할꼬?, 어찌할꼬?”라고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성인(聖人)이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생각이 많으면 우유부단해져서 문제이고 반대로 생각이 없으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공자께서 두 번 생각하라고 한 것이다. 남과 북이 만나고 난 뒤에 우리는 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결실을 얻어야한다.

긍정적 사고로 우리는 남과 북의 만남을 정리하고 실천하기를 갈망한다, 우리 겨래의 미래를 내다보며 글을 쓰는 문인들이 앞장 서서 겨레의 이산을 아파하고 만남뒤의 수많은 과제들을 살펴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사무실에서 봄의 무등산이 보인다. 검은 구름이 무등산 상봉을 배회 할 때는 마음 또한 먹구름이 오는 것 같고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떠다닐 때는 희망의 꿈이 오는 것 같다.

남과 북의 만남이 성공을 거둘수 있도록 우리의 화두를 ‘여지하(如之何) 여지하(如之何)’ 어찌할고? 어찌할고? 로 삼고 슬기로운 지혜를 얻어 남과 북이 이제는 영원히 헤어짐이 없는 한 겨레로 공존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