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간

2024-11-19     광주타임즈

 

[광주타임즈=광타춘추]박상주 주필=가을 산야의 고운 단풍이 내려 앉은 것을 보니 이제 가을도 끝의 절정이 아닌가 싶다. 지금껏 가을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산과 공원 등을 찾았지만, 한편에서는 이른 겨울 준비에 한창이다. 쇼윈도의 마네킹은 이미 겨울옷으로 갈아입었고 다양한 겨울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가을에서 겨울로의 이동이다. 시기적으로는 가을걷이를 모두 끝내고 겨우내 먹을 김장을 준비하는 시기인 것 같다. 우리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 대다수는 예전보다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겨울 추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겨울은 달력으로 입동부터 입춘 전까지, 천문학적으로는 동지부터 춘분까지를 가리킨다. 이 맹동(孟冬) 중동(仲冬) 계동(季冬)의 삼동세한(三冬歲寒)을 건강하고 보람 있게 보내야만 그 이듬해의 삶을 충실하게 꾸려갈 수 있다.

“바깥세상이 폐쇄되면 내부의 세계가 넓어진다. 겨울은 내면의 계절이다.” 일찍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서 한 말이다. 그는 또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라는 글에서 “겨울은 ‘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절망 속에 희망을 잉태한 거대한 역설의 구근”이라고 했다. 

청마 유치환도 ‘나는 고독하지 않다’라는 글에 “온갖 생물을 시들리고, 움츠려뜨리기 마련인 것으로만 알고 있는 그 서글프고 가혹한 추동(秋冬)이라는 계절이 실상은 온갖 생물의 생명들이 다시 움트고 소생함에는 없지 못할,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겨울은 인내를 시험받는 절기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가슴으로 살아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은 어려움을 맞게 되면 겸손함을 알게 되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강한 사람에게는 혹독한 추위도 세상을 가로막는 폭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에는 따뜻한 난로가 피워지고 방안의 그윽한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 나와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순백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즐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겨울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는 익숙해진 생활의 편리를 고집하여 문명의 이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욕망은 자연에 반하는 생활을 추구하고 극에 달한 이기심은 인간의 본향을 잃게 한다. 

봄은 새싹이 움터 나와 꽃피워 향내 나기에 아름답고, 여름은 따뜻한 태양 아래 가식의 옷을 벗어 던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땀방울의 의미를 나누며 성장의 시간들을 만들어 가기에 아름답고, 가을은 풍성한 결실과 낙엽의 낭만이 있어서 아름답다. 겨울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어서 아름답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계절이 문을 열고 우리를 마중하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제위기의 폭풍 속에서 실존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군사적 긴장 고조로 걱정이 태산 같은 접경지역의 주민들에게, 희망을 기대하다가 절망의 현실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그래도 말해주고 싶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희망이다. 

마음까지 추운 겨울을 이기고, 환희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희망을 보충해야 한다.

지금은 희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