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한강작가의 실질적 고향 ‘장흥’

아버지 한승원과 동갑내기 이청준이 나고 나란곳 내로라하는 문인·작가들만 80~90명에 이를 정도 문학적 뿌리 더듬으니 조선시대 백광홍·백광훈 형제

2024-10-13     /최현웅 기자
‘2024년 노벨 문학상’ 영예는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에게 돌아갔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작가. /뉴시스

[광주타임즈]최현웅 기자=한강 작가가 지난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 작가의 실질적 고향인 장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광주에서 보내고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작가가 된 후 아버지의 고향인 장흥에 내려와 생활하면서 글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적 고향인 셈이다.


장흥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장흥 회진 진목마을 출신 이청준과 신상마을 출신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이청준과 한승원은 동갑내기 동무다)뿐 아니라 녹두장군의 송기숙, 아동문학가 김녹촌, 시조 문학가 김제현을 비롯 2021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승우 작가까지 내로라하는 문인들을 배출한 남도문학의 산실이자 대한민국 문인들의 요람이다.


장흥군에 따르면 문단에 이름을 알린 근·현대 장흥 출신 문인들의 숫자만 8~9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장흥이 이처럼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배경에는 조선 중기 기봉 백광홍 선생에게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관서별곡.

■ 기봉 백광홍(1522∼1556) 1522(중종 17)~1556(명종 11).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대유(大裕), 호는 기봉(岐峯). 아버지는 세인(世仁)이며 어머니는 광산 김씨로 첨정(僉正)광통(廣通)의 딸이다. 아우 광안(光顔)과 광훈(光勳) 및 종제 광성(光城) 등 한 집안 4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칭송 받았다.

1522년(중종 17) 전라도 장흥 사자산 아래의 기산(岐山)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태어난 곳의 ‘봉명재(鳳鳴齋)’라는 서당에서 수업했고, 후에 시산(詩山, 지금의 태인)에 있던 이항(李恒)에게 가서 공부했다. 이 무렵에 신잠(申潛)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철학을 논했다.

1549년(명종 4) 28세로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1552년(명종 7)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명종 8) 시부회(時賦會)에서 장원해 선시십권(選詩十卷)을 상으로 받고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 뒤 1555년(명종 10) 봄에 평안도평사가 돼 관서지방의 절경과 생활상·자연풍물 등을 읊은 기행가사(紀行歌辭)인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었다.

그의 ‘관서별곡’은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서 지은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효시가 돼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관서별곡'은 평안도평사의 벼슬을 제수 받고, 관서지방을 향해 출발하는 것부터 부임지를 순시하기까지의 기행 노정을 운치 있게 그려낸 것으로, 국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  옥봉 백광훈(玉峰 白光勳, 1537~1582)

기봉 백광홍의 아우다. 사암 박순의 문인으로 당나라의 시풍에 정통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옥봉집’을 저술한 시인이다.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백광훈은 이산해(李山海), 최립(崔岦) 등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의 칭호를 받았고, 글씨에도 일가(一家)를 이뤘으며, 송시(宋詩)의 풍조를 버리고 당시(唐詩)를 따르며 16세기 조선 문단의 시풍(詩風)을 혁신했다.

선조 5년(1572)에 백광훈은 포의(布衣, 벼슬 없는 선비)인데도 제술관(製述官)에 발탁돼, 명나라 사신을 글로 접대할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었다.

삼당시인 가운데 남은 작품 수가 가장 많으며, 제일 먼저 시집이 출간돼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16세기 문학을 주도했다고 평가된다. 그는 우리말의 다양한 어조와 어감, 어기, 어투 그리고 다양한 문맥적 변주의 시상으로 한시 작품을 완성하고자 노력한 시인이었다.

 

■ 존재 위백규 (1727(영조 3)~1798(정조 22).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계항(桂巷)·계항거사(桂巷居士). 장흥 출신. 할아버지는 세보(世宝)이며, 아버지는 진사 문덕(文德)이다.

처음에 증조부에게 수학했으나 유년기를 지난 뒤에는 자수면업(自修勉業)했다. 어려서부터 제가서(諸家書)를 탐독해 학문적 자세를 굳힌 그는 향리의 장천재(長川齋 : 장흥의 관산면 방촌리)에 기거하면서 면학과 교화의 일익을 담당했고, 1750년(영조 26) 학행으로 향천(鄕薦)을 받기도 했다.

경전의 이해나 심성론·이기론에서는 전통 성리학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정현신보 政鉉新譜’나 봉사류(奉事類)에서 당시의 현실을 세세하고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어 실학자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주장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향촌사회 개선론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지방 교육 개선을 통해 향촌 질서의 유지와 교화뿐만 아니라 관리 선발, 지방 관리의 경제 기능까지도 담당할 것을 주장했다.

둘째 정치 기강의 해이와 이에 따라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관제 축소, 향촌의 자율적 공평 부세론, 지방 관리 선도책 등을 구상하고, 셋째 견실한 향촌 방위 체제를 주장한 점이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장흥 출신 문인으로 수우옹 위세직(1655~1556), 청사 노명선(1707~1775), 지지재 이상계(1758~1822), 우곡 이중전(1825~1893), 겸재 문계태(1875~1955) 등이 있다.

 

이청준 작가.

-현대 이후-
■  이청준(李淸俊, 1939년 8월 9일~2008년 7월 31일)
장흥 회진면 진목리에서 출생했으며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나왔다. 1966년 서울대를 나온 후 ‘사상계’에 입사했다가 1967년 ‘여원’사로 이직했으며 1971년에는 ‘월간 지성’ 창간에 참여했다.

한편 그는 1968년 10월에 남경자와 혼인해 13년 후 1981년에 외동딸 이은지를 득녀했다.

1965년 ‘사상계’ 신인 작품 모집에 단편 소설 ‘퇴원(退院)’ 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고, 이후 단편 ‘임부(姙婦)’, ‘줄’, ‘무서운 토요일’, ‘굴레’등을 발표해 작가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계속해서 ‘소문의 벽’,  ‘등산기’ 등을 발표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색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조율사’· ‘이어도’· ‘눈길’등이 있으며, 창작집으로 ‘별을 보여드립니다’· ‘예언자’· ‘당신들의 천국’· ‘자유의 문’· ‘서편제’ 등 중·장편집이 있다.

2006년 여름 폐암 판정을 받고 2008년 6월 중순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7월 31일 새벽 4시쯤에 향년 70세(만나이 68세)로 영면했다. 그의 장례식 빈소에서는 삼일장 첫날에 김승옥, 이어령, 황동규 등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동문 출신의 문인들이 조문, 애도했다.

한승원 작가.

■ 한승원(韓勝源, 1939년 10월 13일~ )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호는 해산(海山), 본관은 청주이다. 장흥 회진면 신상리 출생이다.

8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명심보감을 배웠다. 장흥중학교를 거쳐, 1954년 장흥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에서 문학반에 들어가 김용술 교사와 송기숙을 만났다. 1955년, 송기숙과 교내 잡지 ‘억불’을 창간해 수필을 실은 것이 계기가 돼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집안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졌고, 대학 시험에 실패,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른 후, 졸업장도 받지 않고 고향집에 있었다. 1956년 고향집에서 농사를 도우며, 문학 수업과 교직 면허 취득을 위해 공부했다. 교직 시험에 실패하고 잠시 농사를 계속했지만, 진학을 마음먹고 대학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김동리 교수의 강의에서 이문구, 박상륭, 조세희, 강호무, 한상윤, 이건청, 하현식, 장효문, 조정자, 곽현숙, 백인빈, 김원일, 양문길, 신중신 등 이후 소설가가 된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 톨스토이, 헤밍웨이,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카뮈 등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2주에 1편씩 소설을 습작하며, 김동리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서라벌예대를 졸업하지 못한 채 중퇴를 선택하고, 1962년 귀향, 이듬해인 1963년 1월에 입대했다. 1965년 결혼했고 처가에 살면서 습작을 계속했다. 1966년, ‘가증스런 바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장동서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처가를 떠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에 소설 목선이 대한일보에 당선되자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 활동했다. 1972년 광주의 문인으로 구성된 동인회 ‘소설문학’을 조직했다. 문순태, 김신운, 강순식, 이계홍 등이 동인으로, ‘소설문학’에서 문학 수업을 함께했다. 1980년, '구름의 벽'으로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7년 귀향해, 현재 장흥에 거주 중이다.

송기숙 작가.

■  송기숙(宋基淑, 1935년 7월 4일~2021년 12월 5일)

대한민국의 소설가다. 장흥 용산면에서 출생해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현대문학’에 평론 ‘창작 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이 추천됐고, 1965년 ‘이상서설’로 추천이 완료됐다.

1966년 단편 ‘대리복무’, 장편 ‘자랏골의 비가’ 등을 발표했다. 1972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됐고, 1973년 전남대학교 교수가 됐다.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교육지표사건)으로 1년여 간 구금, 해직됐다. 이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다시 구속됐다가 이듬해 석방됐다. ‘녹두장군’, ‘암태도’, ‘개는 왜 짖는가?’, ‘휴전선 소식’ 등을 발표했다. 1984년 전남대학교 교수로 복직했으며, 1987년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창설해 초대 공동의장을 맡았다. 2000년 8월 교수 정년 이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 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실의 부정에 과감히 대처하는 80년대 행동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2021년 12월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녹촌 작가.

■ 김녹촌(金鹿村, 1927년~2012년 6월 28일)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준경(金浚璟)이다.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동시를 발표했다.

1951년 전남일보에 시 ‘강마을에’과 ‘창변’을, ‘새벌’지에 ‘해바라기 상’을 발표했다. 1963년 경북글짓기연구회를 창립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연’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등단 초기인 1977년까지는 주로 자연을 대상으로 순수 서정적 동시를 발표했으나 그 이후는 서민아동문학론에 편승해 소외된 아동이나 산업화로 인한 여러 문제를 다루는 현실 참여 경향의 동시를 발표했다.

김녹촌은 1954년 대구동인국민학교(현 대구동인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대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경주 현곡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영덕, 포항, 의성, 봉화, 대구 등의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1988년 민족작가회 아동문학분과 고문으로 임명됐고, 2006년에는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2012년 6월 28일 사망했다.

이승우 작가.

■  이승우(李承雨, 1959년 2월 21일~)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본관은 인천이다.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했다. 1981년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이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93년, ‘생의 이면’으로 제 1회 대산문학상을, 2002년 ‘나는 아주 오래살 것이다’로 15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 ‘심인광고’로 제4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전기수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제10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지상의 노래’로 제4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작가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가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황석영과 함께 언급한 소설가다. 

그는 소설가 이청준의 뒤를 이어 관념적인 소설을 쓴다는 평을 받아왔다. 제10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특히 읽는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것을 읽게 하는 형이상학적 보편성이야말로 다른 한국 소설이 지니지 못한 이승우 소설만의 득의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문단과 언론에서 찬사를 받았으며, 갈리마르 출판사가 펴내는 폴리오 시리즈에 ‘식물들의 사생활’이 포함될 정도로 프랑스에서 지명도가 높다. 프랑스에서 그의 작품이 관심을 받는 이유에 대해 그는 “기독교적 세계관, 개인과 내면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정서에 덜 호소하는 내 문장이 그쪽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