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또 별세…김성주 할머니
미쓰비시 끌려가 강제노동·부상 당해…정부 제3자 변제안 수용
[광주타임즈] 전효정 기자=일제강점기 당시 10대 어린 나이로 일본 군수회사에 강제동원, 광복 이후 배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관련 소송을 이어온 김성주 할머니(사진)가 별세했다. 향년 95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김 할머니가 지난 5일 별세했다고 6일 밝혔다.
순천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만 14세 나이인 1944년 5월께 순천남초등학교 졸업 직후 일본인 담임 선생의 권유와 강압에 의해 일본으로 떠났다.
김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에서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강요받았다. 철판을 자르는 선반 일을 하다 왼쪽 검지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1944년 12월7일 발생한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당시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의해 발목에 큰 부상을 입었다.
해방 후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로 주변에서 온갖 인신모욕과 구박을 듣는 등 평온 날 생활을 가져 보지 못했다.
뒤늦게 용기를 내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관련 소송에 나섰지만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기각 패소했다.
이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2012년 10월 일본 소송 원고들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 6년여 만에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미쓰비시 측이 배상 이행을 거부하자 원고 측은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단행, 김 할머니도 미쓰비시중공업 특허권 2건을 압류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3월 한일관계 개선을 구실로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하자 김 할머니는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에 참여해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여러 이유로 기존 입장을 바꾸면서 지난해 5월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함과 동시에 미쓰비시중공업 특허권 압류도 취하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정신대에 끌려갈 때 중학교, 고등학교 다 보내주고 일하면 월급도 준다고 꼬셔서 (일본에) 데려가서 평생 골병이 들게 만들어놨다. 지금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다 대고 하소연을 해야 하느냐”며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끌고 갔는데, 어디다가 사죄를 받고, 어디다가 (사죄) 요구를 (해야) 하겠느냐? 일본에게 옛날 몇십 년을 기죽고 살아왔는데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김 할머니는 슬하에 2남 2녀를 뒀다. 빈소는 안양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후 1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