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65회
[광주타임즈]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마셜정책(material plan)정책의 골자는 서독의 물품을 관세 없이 마구 사주다 보면 높은 관세장벽에 막혀 미국 유럽 등지의 선진국에 수출할 수 없는 나라들이 서독에 자본을 투자하여 공장을 지어 수출 원가를 낮추려 할 것이란 게 미국의 속셈이었습니다. 이 정책은 대한민국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그야말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수출원가를 낮추기 위해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것입니다. 또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사자로서 일본의 항복 조건이었던 전쟁 배상금을 면제해주고도 막대한 무상원조(당시의 우리나라 아파트 시세로 환산하면, 20평형 가격으로 44만여 채 값에 해당하는 35억 달러 상당)를 원조해 주었고, 일본은 그 지원에 힘입어 전쟁에서 패망한 잿더미 속에서 경제가 급성장했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여 미군이 필요로 하는 군수물자를 일본에서 생산 조달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경제성장의 황금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은 세계 굴지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합니다. 미국은 소련이 핵을 보유한 데다 중국이 공산화되어서 상당한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화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여겨 이승만 정권에게 대일청구권 협상을 서둘러 한.일 간의 국교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비밀리에 일본에게 35억 달러를 제공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으로 그 사례를 들어, 대한민국에도 일본에 상응하는 정도의 경제개발 자금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에 침략한 대가로 25억 달러를 내어 놓아야 일본과 화해하겠다고(가짜영웅 박정희는 무상 3억 달러에 합의)주장하는 바람에 한.일 회담이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국 정가에서는 이승만을 가리켜 고집불통의 억지를 부리는 늙은이라며 혀를 찼지만, 이승만이 일본에게 청구권 25억 또는 28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36년간의 압제를 받으며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수탈해 간 물자와 인적 피해를 망라한 것으로서, 당시 국내외의 전문기관으로부터 감정을 받아 산정한 금액이었습니다.
미국이 한국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목적은 확고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본이 그만한 돈을 내어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데 미국의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이 세계에서 최고로 잘 사는 국가일지라도 무한대의 자금을 한국에 퍼부을 형편도 아니지만, 한국 역시 아직은 경제개발을 할 만큼 정세가 성숙되지도, 국가운영의 체계가 안정되지도 않았고, 극심한 혼란 속에서 날로 부패공화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4·19가 터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 후진국에서 혼란기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군사 쿠데타를 우려해야 했습니다. 당장 추진해야 할 한국경제개발 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혹시 쿠데타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지요. 왜냐하면, 국가경제개발을 수행하자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중요하고, 그중 군부의 지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군부동향 사찰을 강화하여 그 지도자급 장성들 하나하나의 성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짜영웅 박정희가 문제의 반란 위험성이 있는 군인으로 지목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해방 전에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일본군 중위까지 진급된 경력과 남로당 간첩이 되어 군부 총책으로 암약했던 사실,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의 총책이었다는 내용이 부각되었던 겁니다. 또한, 군사동향 사찰 팀이 가동되었던 당시에도 소위 숙군(肅軍)을 주장하던 중견 군벌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곧 무슨 일인가를 벌일 단계로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그 사찰 내용을 근거로 장면 내각에 가짜영웅 박정희를 예편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렇지만 장면 정권은 같은 장 씨이자 절대 충성을 맹세한 군부 실세 장도영 참모총장을 불러 알아봤지만, 장도영은 자신이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한, 군부에서는 절대로 어떤 일도 없을 것이라며, 가짜영웅 박정희는 자신 휘하에서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호언장담했습니다. 장면 내각은 장도영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지만, 미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장면 정권에게 가짜영웅 박정희를 제거하라고 종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 면 씨의 성격은 2020년에 대통령으로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한데 가 있어서 검찰총장 윤석열을 차마 못 자르고 미적거리다가 검찰 쿠데타 시도로 의심되는 곤란을 겪었지만 다행이 자유로운 민주주의 탓에 깨인 시민들의 촛불 혁명으로 위기를 넘기는 듯하지만 2020년 2월 현재의 진행되어지는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의 앞날이 불분명한 안개 정국의 혼미한 상태입니다. 장면 정권 또한 그런 모양이라서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적 거리다가 결국은 군사 쿠데타를 당하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미국은 이미 서독에 마셜 플랜을 적용하여 경제성장을 거둔 사실을 들어, 서독 정부에게 미국의 극동정책을 천명하면서 대한민국을 경제개발 시켜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당신들의 경제개발 성공경험을 대한민국에게도 전수해 주고, 도울 방법이 있으면 아끼지 말라는 은근한 압력을 넣었습니다. 서독으로서는 미국의 압력을 무시하거나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비슷한 처지에서 공산 세력으로부터 민족분단을 겪고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의 여러 빈국(貧國)으로부터 노동자를 수입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는 석탄 생산을 위한 광부를 한국에서도 보내줄 수 있는지를 미국 정치인 중 한국통에게 타진했고, 미국 대사관은 1961년 5월 초에 장면 정부에게 그 가능성을 물어 장면 정부는 즉각 ‘오케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에 5·16 군사쿠데타로 서독에 광부를 파견하는 문제를 추진하기도 전에 장면 정권은 막을 내렸습니다.
<▲66회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