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박사와 자동차 천국

2012-10-30     광주타임즈
한국전쟁발발이전해인 1949년은 초대 주미대사 장면박사가 미국의 대통령인 해리트루먼에게 정식으로 신임장을 제정한 해이다.
장면은 파리에서 열린 제 3차 유엔총회 파견 한국대표단을 이끌며 회기 마지막 날인 1948년 12월 12일 극적으로 신생 대한민국에 대한 유엔의 승인을 얻어냈다. 그 공로로 대한민국 최초의 주미대사가 된 그는 불과 3개월만에 33개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
1882년부터 1905년까지 겨우 여덟 나라만 대한제국을 국가로 쳐주었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한 성과였다. 많은 사람이 그를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기억하지만, 정치가이기 전에 그는 발군의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당시 차 없는 외교관이였던 장면은 유엔총회 수석 대표 때 받은 여비를 아낀 3000달러로 뷰익이란 자동차를 구입했다.
그가 당시 토로하는 차 없는 설움은 약소국 외교관의 비애를 잘 말해준다. “각국 주재 대사를 예방해야 하지만, 자동차가 없었다. 하여 세내 타고 온 차는 시간이 넘어 벌써 가버렸다. 하루는 비가 줄기차게 퍼붓고 있었다. 차를 잡느라 길가에서 애를 쓰다 보니 한국의 대사가 쪼르르 비를 맞았다. 그때의 비애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이렇게 장면은 회고 했다. 한데, 주미대사로 근무하던 시절 터진 6·25전쟁도 외부 지원이 없었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이를 잘안 장면은 전쟁이 터진 다음 날 백악관으로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소총 한자루 보내지 아니한 미국의 냉정한 태도로 인해 거의 무방비 상태로 침략을 당하게 한 책임”을 따져물어 미국의 파병을 얻어냈다. 또 장면은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군 파병도 이끌어 냄으로써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데 기여했다. 한국군은 쓸수도 없는 구식 총 2만정으로 탱크한데 없이 전쟁을 해야했으니 장면은 공을 세운 외교관이다. 공은 또 있다. 장면을 속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 3000달러짜리 뷰익 자동차다. 한데 이러했던 대한민국이 이젠 경제대국의 반열에 속하고 자동차의 천국이 돼가고 있다. 특히 외교관(대사)이 차도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꿈이 아닐 수 없다. 실지 현대·기아차가 지난 상반기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4위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한 실적이 놀랍다. 한데 도요타가 중국생산 판매분을 합할 경우 여전히 앞선 것으로 수정 확인 됐으나 일본이 자동차 대국이라선지 간발의 차로 현대·기아차가 도요타와 어깨를 나라히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1999년 합병 당시 세계 7위를 목표로 내건지 10여년 만에 거둔 비약적인 초과 성과다. 3000달러 자동차를 타고 공을 세운 장면의 영혼이 기뻐할 일이다. 허나, 현대·기아차의 약진은 지난해 도요타가 미국에서 대규모리콜 사태를 맞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적으로 연결한 마케팅과 품질 제고 노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움직이는 국가 홍보관인 자동차 분야에서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사실은 TV, 냉장고등에서 국내 기업이 일본 소니를 제친 것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최근 실적은 도요타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인데다 국제 시장의 최근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는 점에서 마냥 박수만 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이미 리콜의 휴유증을 이겨 내고 지진의 여파에서도 벗어나 생산능력을 거의 회복, 신형 캠리등을 앞세워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최대 시장 미국에서 내성을 키운 도요타와 언제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지 모르는 현대·기아차는 사정이 전혀 다르지 않다. 자유무역협정(FTA)발효 이후 국내 시장에서 몰려오는 유럽차를 보면 국내 지장도 더 이상 현대·기아차의 독무대는 아니다. 국내외 시장 모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글로벌 전략이 필요하다. 한 단계 도약하는 치밀한 검증과 전략 개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동차도 없이 일한 외교관들의 넋이 기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