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경로 찾기 어렵고 화랑가에 책임전가 쉬워
최근 각종 언론에서 생중계로 보도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압수 수색 현장은 미술품 전시회장을 방불케 했다.
검찰이 압수 수색에 들어간 전 전 대통령의 집과 큰아들 재국 씨의 출판사 ‘시공사’, ‘허브빌리지’ 등에서는 총 500여 점의 미술품이 나왔다.
그림에서 불상까지 발견된 미술품들의 총액은 수십억 원이 넘는다.
전문가들은 ‘전두환 일가’ 소유 미술품의 시장가치를 따지면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최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두환 일가’에서 발견된 작품 중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재국 씨 소유의 회사와 건물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그중 ‘허브빌리지’에서 발견된 불상은 태국이나 미얀마에서 라마 양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가격이 10억 원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불상은 높이 2m가 넘는 대형 불상으로, 청동으로 주조하고 그 위에 금을 입힌 것으로 보이며 전반적으로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이 밖에도 함께 압수된 박수근, 천경자 등 유명작가의 그림 또한 관심을 끌고 있다.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며 아낙네들과 소녀 등 서민들의 삶을 소박하게 그려내 ‘국민화가’로 사랑받는 박 화백의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박 화백의 작품은 지난 2007년 5월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여류화가인 천 화백은 우리나라 여성작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로 작품의 상태에 따라 가격이 수천만 원대부터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집에서는 이대원 화백의 작품이 나왔다.
이 화백도 국내 미술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로 그의 ‘농원’ 연작 가운데 한 작품인 ‘농원’(50x60.6㎝. 1977년작)은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1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이 외에도 같은 시리즈의 1978년 작품은 1억2500만 원에 거래되는 등 이 화백의 작품은 보통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 같이 고가의 미술품들이 줄줄이 발견된 정황을 들어 전문가들은 탈세와 비자금 세탁 등에 이용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속세법에 미술품에 대한 상속 증여세가 명시돼 있지만 미술품은 소유자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까닭에 공개적으로 작품을 주고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상속이나 증여세를 물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수 많은 고가 미술품을 비공개로 수집했다면 자손대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보물창고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또 미술품은 양도소득세에서 자유롭다.
관련 법규도 없을 뿐더러 서화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한 미술업계 관계자는 "작품들의 유통경로는 무형적 성격이 강하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이동경로를 찾아내기 무척이나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많은 재벌들에게 미술품수집은 외형상 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면서 재산축적에도 도움이 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가지고 있는지, 얼마에 사고 팔았는지 알지 못하는 불투명한 유통구조가 계속된다면 미술품이 재산 증식과 상속 증여 목적으로 사용되는 형태를 막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검찰과 과세당국은 전 전 대통령 일가에서 압수된 미술품들은 규모나 가치 등으로 미뤄 탈세 의혹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1000만원대 이상의 고가품에는 진위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거래 내역과 소유 및 보관자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다.
검찰이 이를 추적해 분석하면 정확한 가격과 전씨 일가의 취득 자금 출처를 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취득자금의 출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면, 현행 상속·증여세법의 조항에 따라 탈루 소득으로 간주해 형사처벌과 함께 세금을 추징할 수도 있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사기나 기타 부정한 방법을 통한 적극적인 탈세 행위는 과세 시효가 15년까지로 되어 있다”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유죄 판결과 벌금 추징이 확정된 뒤 음성적으로 미술품을 샀다면 탈세 혐의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