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 56회
2020. 01.08(수) 13:11

[광주타임즈]통일코리아 지도자회 이사장 문경주=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의 경제개발이 가짜영웅 박정희가 집권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거짓 주장입니다. 오히려 한국경제개발은 5·16쿠데타 때문에 1년여 간이나 늦어졌습니다. 극단적인 반대논리로 이야기하면, 당시엔 하루를 못 넘기고 굶어 죽는 이웃들이 허다했습니다. 따라서 한국경제개발 추진 지연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굶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국민 전체가 5·16쿠데타 때문에 1년을 더 고통 받으며 굶어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개발 성공에서 결과만을 따진다면 그 시작의 빠르고 늦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재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와 누가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추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금 조달과 추진력, 그리고 건설 능력 등을 고루 갖추어야 한다고 할 때 가짜영웅 박정희가 특별히 못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직하지 못했으며 투명하지도 못했고, 독재의 깊은 수렁에서 은밀하게 추진되어 원조자금 사용이 지역 편중, 재벌편중 등 합리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 자본을 대준 미국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철저히 감독해야 할 주인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참여가 배제되어 검증과 감시 기능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채 통제된 언론으로부터 박정희가 경제개발 영웅이란 선전만을 들어야 했으므로, 부실공사와 정경 유착이 심화하여 아까운 원조 자금이 유실된 측면이 상당할 것으로 의심되기도 합니다.

첫째, 경제개발 자금 조달과 사용내역을 살펴봅시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가짜영웅인 박정희 대통령이 부자여서 그의 개인 자금으로 경제를 개발한게 아니라는 것까지는 반론할 수 없을 겁니다. 대한민국 경제개발 자금은 두 말할 것 없이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국들의 원조 또는 특혜 저리 차관에 의해서 집행되었습니다. 또 이미 케네디 정부의 성명서에서 밝힌 대로,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미국이 필요로 하는 나라를 지원한다고 확약한 사실은 민주당 집권시기인 1961년 1월 20일 자 성명으로 전 세계를 향하여 선언했습니다.

둘째, 건설 능력입니다. 건설 능력과 기술력에 관해서 우리는 이미 드럼통으로 자동차를 만들 정도의 기술력과 삽질로 바다를 막을 정도의 투지력이 있었습니다. 태산이라도 옮길 듯 한 능동적인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한겨울 눈 내리는 계절에 부산의 UN군 묘지를 푸른 잔디 공원처럼 가꿔놓은 창조적인 발상을 가지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아파트건설 업체인 중앙산업 등, 기초적인 토목공사를 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건축된 아파트는 1956년~1959년까지 1956년 중앙아파트, 교복동에 행촌아파트, 1957년 종암아파트, 1959년 개명아파트 그리고 문화아파트. 등이 있었습니다. 박정희란 특정 영웅이 나타나서 경제 개발했다고 믿는 50대 이상의 지지자들은 가짜영웅 박정희가 아니고서는 아파트 건축은 물론 어떤 토목 공사도 할 능력이 없었다는 요지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믿든 간에 살펴 본 바와 같이, 우리에겐 돈만 있다면 경제를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infra)가 이미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건설업을 시행해온 것은 1950년대부터이고 군사정권은 1961년 5월 16일부터라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 인적 자원입니다. 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농업생산 부진으로 인하여 남아도는 인력이 넘쳐나서 밥만 먹여주면 일하겠다는 청.장년들이 매일같이 서울 등지의 도시로 밀려드는 형편이었습니다. 따라서 먹고 잠자는 문제만 해결해 주고 아주 형편없이 적은 노임만 줘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한국경제 개발의 주역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힘든 노동을 기피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을 수입하는 형편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고속 성장을 멈춘 이유는 바로 노동자의 부족 때문에 임금이 올라가고, 높은 임금으로 인하여 생산 원가가 높아져 국제 경쟁력이 뒤떨어진 데 원인이 있습니다. 노동 집약적 경공업이 몰락하고 물가가 높아져 고소득 직장인이 되지 못하거나, 대기업에 취직을 못 하면 생활 자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금이 없이 맨손으로 경제개발 했다는 사기극의 실체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건설능력이 있고 노동자가 넘쳐나도, 자금이 없다면 경제개발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과연 돈 한 푼 없는 나라에서 가짜영웅 박정희가 나타나서 경제개발을 성공시켰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 협상에서 받은 돈은 독립 축하금 명목의 무상원조 3억 달러, 유상 차관형식 3억 달러, 도합 6억 달러입니다. (그 이외 민간 차관 등을 합치면 8억 달러라는 주장도 있음) 이 숫자로만은 일반인들이 과연 당시의 6억 달러가 우리 경제 개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에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달러의 가치 환산은 고정환율제로서, 실제로 암달러 시장에서 달러를 구입하자면 달러당 고정 환율인 255원의 배에 해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기업 또는 어느 집단이 그만큼 비싼 돈을 주고라도 달러를 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제 구조였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마다 달러장수 여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관련하여 일본으로부터 받은 6억 달러를 얼마에 환전하느냐에 따라서 경부고속도로를 7개도 건설할 수 있는 막대한 돈이 될 수도 있으며, 포항제철 공장을 3개나 지을 수도 있는 엄청난 자금일 수도 있는 겁니다.

<▶57회에서 이어짐>
/광주타임즈 gjt2525@hanmail.net
/광주타임즈의 다른 기사 보기
강진 푸소 체험, 농가소득 향상 효과 ‘톡톡’
강진군 기업인‧소상공인과 현장에서 소통한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 박물관 대학 1기 수료식
나주시-농협나주시지부, 폭염대비 ‘그늘 막 쉼터’설치 확대
하남동에 ‘희망배달마차 나눔장터’ 열려

  • (62400) 광주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 422,2층(선암동)  광주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 <광주타임즈>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 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